2022년 임인(壬寅)년 검은 호랑이의 해가 밝았다. 호랑이와 관련된 사자성어 중 ‘양의 몸에 호랑이 가죽을 걸치다’라는 뜻의 양질호피(羊質虎皮)라는 말이 있다. 주로 내실은 빈약하면서도 겉모습만 화려하거나 또는 본질이 바뀌지 않으면 결국 변하지 않음을 비유할 때 쓰인다. 새해를 맞이하여 지난 한 해 『금강경』을 공부하면서 불가의 정수가 담긴 『금강경』을 공부했다는 화려한 상(相)만 남고 실질적인 기질의 변화는 이루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반성해 본다.
부처의 대승법문 가운데 육바라밀(六波羅密)이 있는데 여기서 바라밀이란 열반에 이르기 위한 보살의 수행을 말하며, 육바라밀은 곧 인욕·보시·지계·선정·정진·지혜를 말한다. 이 여섯 가지 중에서 『금강경』에서는 대표적으로 보시와 인욕을 들어 설명한다. 옛날 가리왕(歌利王)이라고 하는 극악무도한 왕이 인욕선인(忍辱仙人)으로 수행할 때의 부처를 만나게 된다. 그는 제대로 인욕을 행한다면 자신에게 모욕을 받고도 원망하거나 화내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부처를 시험하기 위해 결국 사지를 자르게 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부처는 이와 같은 전생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내가 옛적에 가리왕에게 신체를 베이고 끊어냄이 되었으되 내가 그 때에 아상도 없고 인상도 없으며 중생상도 없고 수자상도 없었노라(如我昔爲歌利王에 割截身體하야 我於爾時에 無我相하며 無人相하며 無衆生相하며 無壽者相호라)”.
그렇다면 부처가 당시에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없었다는 것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까? 이에 부처는 만일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었다면 마땅히 화내거나 원망하는 마음을 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인욕을 하면서도 ‘나는 인욕선인이다, 저 사람은 극악무도한 사람이다, 나는 지금 참고 있다’ 등 일체의 흔적이 없이 무심으로 참은 것이다. 부처는 이것이야말로 참다운 인욕바라밀임을 설파한다. 따라서 『금강경』 14장에서 “인욕바라밀을 여래가 인욕바라밀이 아니라고 설할새 이것을 인욕바라밀이라고 이름한다”라고 말씀하고, 대산종사는 그 대의를 ‘여래께서 욕됨을 참고 끊임없이 적공하신 대인욕행을 보이신 것’이라 말씀한다.
어찌 보면 가리왕은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모든 경계라고 할 수 있다. 경계를 따라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시비에 휘말리기도 하고 때로는 그동안의 도심을 한순간 녹여 버리는 유혹에 휘말리기도 한다. 그 가운데 대인욕행이란 경계에 대한 분별식심과 ‘나’라는 상을 놓고 오직 주어진 본분사(本分事)를 다할 따름이니 곧 실(實)에도 묶이지 않고 허(虛)에도 묶이지 않는 무상대도(無上大道)를 성취함이다.
인류를 위한 성자들의 모습을 보면 대인욕행을 하지 않음이 없다. 이에 대산종사는 “세존께서 전생에 가리왕에게 팔다리를 다 잘리는 환란을 당하였어도 하늘을 원망하거나 사람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큰 원력으로 부처님이 되시어 대자비를 전 인류에게 전하셨고, 예수께서 죄 없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희생을 당하였어도 조금도 원망이나 미워함이 없이 큰 사랑을 온 인류에게 전해주셨느니라. 또 공자께서는 백 사람 천 사람에게 배척을 당하였어도 모든 것을 당신 일로 알아 의무와 책임을 다하심으로써 인(仁)을 전 인류에게 전하셨으며, 노자께서는 먼저 도를 얻었음에도 그 자리를 공자께 양보하시어 사양의 도를 온 인류에게 전해 주셨느니라”고 말씀하며 대종사와 정산종사 또한 내우외환을 겪으면서도 생명을 바쳐 일원대도를 교단 만대에 전해주었음을 역설했다.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는 후천개벽시대의 새 주세불인 대종사의 제자로서 비록 수많은 가리왕이 앞을 가로막는다 할지라도 다 함께 대인욕행으로 일원대도의 법륜을 힘차게 굴리고 아울러 호질(虎質)로의 기질변화가 되길 서원해 본다.
‘대인욕행 : 공(公)을 위해서 사(私)를 놓고, 법을 위해서 몸을 잊다.’
1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