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과 어머니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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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과 어머니 마음
  • 박시형
  • 승인 2022.02.22 19:47
  • 호수 1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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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MZ세대를 위한 마음공부2
박시형<br>강남교당 교도<br>서울대학교 연구교수
박시형
강남교당 교도
서울대학교 연구교수

1960년대인가 미국의 대표적인 잡지 표지로 담배를 물고 말을 탄 여성이 나온 적이 있다. 그리고 표지 글로 ‘You've come a long way, baby’라고 쓰여 있었다. 여성이 ‘담배 한 대 무는 데에도 이렇게 오랜 시절이 걸렸군요’ 정도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호랑이 담배 필 적 시절로 느껴지는 이야기가 불과 한 세대 정도 전에 뉴스거리가 된 것이다. 오랜 인류 역사 동안 여성은 차별을 받고 살아왔다. 1970년까지도 여성에게 투표권을 보장하지 않은 유럽국가가 있을 정도였다. 서양의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로 이해할 수 있다.

‘엄마도 페미야?’라고 중학생 아들이 페미운동을 했던 어머니에게 한 질문이 최근 모 일간지에서 가십으로 나온 적이 있다. 80년대 대학을 다닌 여성 진보 어머니가 지은 페미니즘 책을 본 아들의 원망 어린 질문이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의 진보층을 중심으로 추진된 페미니즘 운동이 MZ 세대 남자들에게 남성 역차별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당연시 여겨졌던 남녀의 차이가 모두 차별이라는 불공정행위로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특히 사회에서 영향력이 있던 인사들이 행한 불법적인 성적 행동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미투 운동으로 번지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인류의 보편가치로 여겨졌던 ‘여자는 아기를 잘 낳아서 길러야 한다’ ‘가정을 잘 지키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여성의 일이다’는 말들이 구시대의 가치로 전락하고 있다. 당연한 차이라고 받아들여지던 남녀 차이가 모두 차별이라는 부도덕으로 치부되고 있는 형국이다. 모든 남녀 차이가 여성을 옭아매기 위해서 남성들이 만든 음흉한 음모라는 생각이다. 직장이나 정부 조직에서 여성 고위직 숫자가 적은 것 역시 제도적으로나 법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서 페미니즘이 역공격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가족부’를 해체해야 한다든지, 여성도 군대를 가야 한다든지 하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요즘 여성의 신체조건 향상을 고려하면 이해가 가는 주장같이 들리기도 한다. 여성의 권리를 얻기 위해서 출발한 페미니즘 운동이 남녀 편 가르기와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느낌까지 드는 형국이다.

가장 보수적으로 알려져 있는 종교에서도 페미니즘의 불씨가 퍼지고 있다. 종교의 경전에서 여성 차별적인 문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가톨릭에서 수녀가 신부가 될 수 없다든지, 여성은 부처가 될 수 없다느니, 여성은 남성에 복종해야 한다든지, 하는 말들이 도전을 받고 있다. 신성을 나타내는 자랑스러운 남성의 머리에 비해서 여성의 머리카락은 죄의 상징이라는 놀라운 차별이 지금도 서양 종교를 지배하고 있다. 가장 남녀 평등적인 가치를 가진 원불교에서도 여성 교무에 대한 차별이 도마 위에 오를 정도이다.

갈등의 진원지로 보이는 페미니즘의 시대, 특히 사건마다 어느 진영에 서서 상대방을 공격해야 직성이 풀리는 시대에 원불교는 어떤 중도의 답을 내어놓을까?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우연히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책(샘터, 1988)을 접하게 됐다. 한국의 여러 분야의 인사들이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쓴 수필을 모아둔 책이다.

한국전쟁 이후 폐허의 시대에서 자식을 키워낸 한국 어머니들의 희생과 헌신을 담은 이야기이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중도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어머니 마음’은 진보든 역차별 진영에 선 사람이든 간에 그 사람을 건강하게 키워낸 필수요소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려운 시련에서도 어머니 마음으로 큰 사람은 좌절하지 않고 헤쳐 나간다. 현재 자랑스러운 한국을 만드는데 가장 큰 공로자는 바로 한국의 어머니 마음이 아니었을까 한다.

어머니 마음을 위해서 이제는 여성의 차별,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되는 사회를 살고 있다.

요즈음 아이들은 어머니보다 스마트 폰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미래의 아이들은 ‘AI 로봇’에게서 배우고 위로를 얻을지 모른다. 이러한 물질 개벽의 시대에 어떻게 ‘어머니 마음’을 지키고 발전시킬 수 있을까? 힌트를 원불교 가르침인 ‘부모은’과 ‘타자녀 교육’에서 찾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에서 존재하는 부모님 은혜를 발견하고, 감사하고 보은하는 것, 다른 사람의 자식 역시 내 자식과 같이 차별 없이 잘 교육해야 한다는 열린 마음이다. 이 가르침이야 말로 인류의 건강한 미래를 담보하는 ‘어머니 마음’이 될 것이다. 이 마음은 여성의 희생 위에서 서 있는 것도 아니고, 또 AI 로봇이라는 기계의 역할을 거부하는 것도 아니다. 페미니즘이든 반 페미니즘이든 어느 편에 서는 대신, 이 사회 모든 것에서 어머니 마음을 발견하고 다른 자식들에게도 은혜를 베풀고 감싸 안는 것이야말로 원불교가 가르치는 은혜 발견이 되고 참다운 페미니즘의 미래가 될 것이다.

2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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