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기재
점심 직전에 문자가 하나 왔다. ‘아빠! 나 휴대폰 떨어트려 대리점에 왔는데 잠시 연락해도 돼?’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아들이 점심시간에 대체로 여유 있게 집에 도착하는데 조금 늦는다고 생각했고 나는 별도로 점심 약속이 있으니 외출복으로 갈아입으려는 참이라 아무 생각 없이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평소 아들과 주고받은 문자 내용의 형식이나 별반 차이가 없으니 더욱 의심할 틈이 없었다.
본인 휴대폰이 망가져서 임시 휴대폰을 아빠 이름으로 개설해야 하니 휴대폰 대리점으로 내 공인 인증서를 통해 개통해도 괜찮겠냐고 해서 승낙하고, 우선 주민등록증 사진을 보내 달라고 해서 발송했다. 내 휴대폰에 원격 어플을 깔고 난 후 앱의 비밀번호를 알려 달라고 하는 사이에 아들이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토록 조심하자고 했던 보이스피싱을 내가 겪을 것이란 생각은 꿈에도 못했는데, 어리석게도 당하고 말았다. 다행히 마지막 단계에서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아 금전적 피해는 없었고 해당 기관에 바로 사실을 알리고 적절한 조치를 취했지만, 점심 약속 취소 등 많은 시간을 일 처리로 보냈다.
이 일을 겪으며 나 자신을 반조했다. 평소 점심 시간보다 도착이 늦어진 아들과 약속이 있어 나가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휴대폰이 망가졌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하는 급한 마음에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니 어떤 일이나, 누구의 말이나, 문자라도 그것의 사실여부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공부를 했다.
지레짐작으로 힘드니까 등 이런저런 피상적이고 감성적인 생각이 아니라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사리연구와 시비이해 공부에 대해 깊은 생각을 했다. 한 생각 놓으면 누구나 함정에 빠질 수 있고 한 생각에 사로잡히면 사실이 아닌 것으로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문답감정
얼마 전 이웃에 사는 어머니가 보이스피싱으로 금전적 피해를 본 것을 딸이 조언했는데 몇 달 후 딸이 비슷한 피해를 봤다고 하니 잠간 마음을 놓치면 누구나 피해를 보는 것 같습니다. 공부인은 이 경계로 어떤 일이든 거짓이 아닌 진실과 사실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주의심을 크게 챙기게 된 것 같습니다. 특히 부모들은 자식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무장 해제가 되고 애틋한 마음이 생기니 죄를 짓는 이들은 이를 악용합니다.
<정전> 사리연구의 목적에서 ‘세상이 넓은 만큼 이치의 종류도 수가 없고 인간이 많은 만큼 일의 종류도 한이 없다’고 했습니다.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를 살면서 항상 한번 멈추어 사실과 허위를 분간하는 주의 공부의 중요성을 마음 깊이 새기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4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