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영화마을 수련원에서 8월 13일부터 2박 3일간 퍼머컬처네트워크 출범을 위한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전국의 퍼머컬처리스트와 관심 있는 이들이 150명가량 모여들어 자유롭고 상상력 넘치는 영감을 주고받는 시간을 보냈다. 자연의 원리에 따르는 영속적인 농사와 문화를 뜻하는 퍼머컬처(Permaculture)를 시도하는 전국 20여개 단체들이 곳곳에서 하는 일들을 소개하며 과정과 고민을 나눴다.
2,30대 젊은이들이 많이 참여하여 마을에서 퍼머컬처로 화학비료와 땅을 갈아엎지 않고 탄소를 땅에 저장하는 유기순환 농사를 지어 자급자립하기 위한 다채로운 노력을 소개하고, 월드카페로 관심 있는 곳을 찾아가 질문을 하는 시간을 갖고, 점점이 흩어져있던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퍼머컬처네트워크의 방향과 운영에 관한 논의를 했다. 편안하게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진행 속에 사람들은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빛나는 눈으로 낯선 이들과 열린 대화를 나누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만남이 편안하고 자유롭되 함께하며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온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소란 유희정 교도가 중심이 되어 이끌어왔지만, 이제 대표도 돌아가며 공동으로 하고 자발적이고 민주적인 네트워크 방식으로 한다는 것도 새로웠다.
밤에는 내 일처럼 달려온 음유시인, 디제잉 등 예술가의 음악에 맞춘 춤과 노래는 오래된 폐교의 운동장을 열정으로 가득 채웠다. 늘 삽질하는 농부이기에 잘 단련된 퍼머컬처리스트들의 흥겨운 몸짓은 밤 깊은 줄 모르고 작렬했다. 한쪽에서는 모닥불을 피우고 감자와 마늘, 단호박을 굽고 불멍을 하며 간식을 만들고 작은 말과 개들이 편안하게 돌아다녔다.
마지막 날 사물놀이 공연과 붉은 정령을 즉석 모집하여 강릉 옥계해변에서 감동의 퍼포먼스를 벌이며 출범식을 했다. 난개발과 석탄화력발전소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옥계해변은 산불로 인한 민둥산 아래에 있는 시멘트공장이 바닷가에 인접해 있고, 해안 침식이 심해 모래밭이 푹 꺼지는 급경사였다. 기후재난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지구에 빨간 불이 들어왔음을 알리고 지구에 사는 생명의 붉은 피를 상징하는 붉은 정령들이 걸어들어오고, 홍정윤 무용가가 참가자들이 에워싼 원 안에서 붉은 정령들이 깔아놓은 천을 찢어내어 생명의 슬픔을 위로하는 살풀이춤을 추자 출범식은 절정에 이르렀다.
참가자들은 선언문에서 기후위기 시대를 넘어서는 대안은 탄소문명이 아닌 생태문명이며, 퍼머컬처를 삶에서 실천하는 일이고, 퍼머컬처네트워크는 너와 나, 우리 모두를 돌보는 것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기후위기 정점까지 6년밖에 남지 않은 절박한 현실에서 퍼머컬처 윤리와 철학을 지키면서 지금 이 땅에서 할 일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15년만에 이런 축제는 처음이라는 어느 참가자의 감탄처럼, 이토록 절박한 위기 속에서 생태문명 실천가들의 축제는 서로에게 위안과 힘을 주고 즐겁게 연대하며 행동으로 대안을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교류의 마당이었다.
‘지구를 살리라, 사람을 돌보라, 공정하게 분배하라, 영혼을 돌보라’는 퍼머컬처의 원리가 네트워크 연대를 통해 물결처럼 번져나가 탄소문명이 누적시켜온 온갖 과제를 생태문명으로 서로 돌보고 살리는 마을공동체로 어떻게 전환해낼지 자못 기대되고 가슴 설렌다.
9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