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교당 교도
오후 5시가 좀 지나서 우리 부부는 며느리가 출산한 산부인과로 향했다.
가락시장에 가서 평소 며느리가 좋아하는 참외를 사고 빵집에서 롤케익을 사서 들고 갔다. 며느리가 이틀 전에 남자 아이를 낳았다. 산모는 아직 수술부위에 통증이 있어서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교당에서 아기의 법명을 미리 받아서 잘 설명해 줬다. '尹浩', 다스릴 윤 자에 넓을 호, 넓은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이 되겠지만, 앞으로의 세상은 다스린다기보다는 크게 봉사하고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인물이 되라는 뜻이라고 나름대로 해석해 줬다.
34년 전에 내가 첫딸을 얻었을 때는 진통하는 아내가 산부인과의 수술실로 들어간 후 밖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그렇게도 길었다.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이 오직 온전한 아기만 태어나기를 간절하게 기도했다.
딸을 처음 만났을 때는 아빠가 되었지만 멀리서 온 손님을 만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딸이 결혼을 해서 7년 전에 첫딸을 낳았을 때는 내가 벌써 할아버지가 되었는가 하는 어색함이 한참동안 가시지 않았다.
그때는 딸이 딸을 낳아서 외할아버지가 되었지만, 이번에는 아들이 아들을 낳아서 친할아버지가 되었다. 어제는 처음으로 갓 태어난 아기들이 있는 면회소에서 숨이 차서 산소를 흡입하고 있는 아기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처음으로 만났다. 태어나자마자 산소 호흡을 하고 있는 아기가 아무 일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출산 3일째가 되는 오늘 두 번째로 볼 때는 산소 호흡기를 떼고 온전한 상태로 만났다. 저 생령은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우리 가문에 오셨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속으로 그에게 말했다.
“전생에는 우리가 어떤 관계였는지 모르지만 이번 생에는 제가 할아버지가 됩니다. 훌륭한 아빠와 엄마가 있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특별히 할 일은 없겠지만 잘 성장해서 훌륭한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앞으로 잘 지내도록 부탁드립니다.”
우리 부부는 병원에서 며느리를 간호하고 있는 아들과 함께 병원 부근의 식당에서 순두부찌개를 먹었다. 아들이 ‘산모는 통증으로 힘들어 하고, 아기는 산소 호흡에다 초음파를 찍으라는 등 신경이 쓰여서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빠가 되는 게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내가 아빠였을 때 딸은 열이 자주 올라서 병원에 가서 알코올로 온몸을 닦아서 열을 내려야 할 때가 많았다. 아들은 장이 좋지 않아서 수시로 설사를 했다. 생후 9개월 때 가성콜레라로 병원에 1주일간 입원했을 때는 머리에 주사바늘을 꽂아서 포도당 주사액을 7천cc나 맞은 적도 있었다. 생후 1년이 된 아들이 설날 아침에 동네 목욕탕의 탕 속에 빠져서 큰 대(大)자로 가라앉아 있는 것을 건져서 겨우 살린 적도 있었고, 다리의 아킬레스건이 거의 절단된 아들을 업고 예루살램 정형외과로 죽어라고 달린 적도 있었다. 그렇게 살아가면서 아버지가 된다고 말해줬다.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고 또 어른이 늙어가는 이치를 생각하면서 언젠가 TV에서 본 연어가 생각났다. 연어는 원래 태어났던 곳으로 돌아와서 무수히 많은 알을 낳고 죽은 후 강 바닥에 가라앉아서 많은 어류의 먹이가 된다고 한다. 이제 할아버지는 자식들을 위해 할 일이 별로 없다. 삶의 본류에서 약간 비켜 선 상황에서 그들이 역동적으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만 할 뿐이다. (2014.5.2)
11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