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내가 다녔던 직장 입사동기의 결혼식장에서 전에 함께 근무했던 직장 동료들을 많이 만났다. 그 중에는 정년퇴직을 해서 집에 있는 사람도 있지만 아직도 계열사의 임원으로 근무하는 동료들도 적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우리는 먼저 승진하기 위해 노심초사했고, 나는 승진의 경쟁에서 탈락되어 비참했던 심경도 맛보았다.
승진의 경쟁에서 밀린 후 원불교의 법문을 수없이 반복해서 연마했지만 그 상실감을 해결할 수는 없었다. 나의 직장생활 중 몇 년마다 찾아오는 승진경쟁이라는 스트레스가 사업을 추진하는 것 못지않게 힘들기도 했었다. 그때마다 ‘누구와 비교해서 행복을 추구하지 말라’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그것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기도 어려웠다.
그랬던 내가 아직도 임원으로 근무하는 옛날의 경쟁자들을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옛날 같으면 나 자신과 비교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그런 마음이 전혀 없었다. 도리어 퇴직해서 집에 있으면 아내로부터 구박당할 수도 있는데 그나마 나갈 직장이 있어서 참으로 다행스러워 보였다. 그들의 행복이 나에게도 편안함으로 비춰지는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108배를 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선(禪)을 하고, 원불교 교전을 읽고, 일원상 서원문, 반야바라밀다심경, 금강경, 수심결을 연마하고 있다. 108배나 선, 그리고 경전연마를 할 때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것처럼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더 이상 무엇을 보태거나 채우고 싶은 게 없었다. 그래서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들을 보더라도 부러운 마음이나 상대심이 생기지 않았다.
전에는 아내와 취향이 달라서 생긴 사소한 갈등이 있었다. 내가 좌선을 하거나 경전 연마를 하고 있을 때 양재천을 걷자, 등산을 하자고 하면 내 나름대로 세운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싫었다. 그래서 아내로부터 불평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내가 108배를 하거나 좌선을 할 때 아내가 무엇을 원하면 당장 내가 하던 행을 멈추고 아내의 의사에 따르는 편이다.
그리고 최소한 아내에게는 나의 자존심을 구길 정도로 심한 말을 들어도 별로 속상하지 않고, 마음속에 섭섭하거나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게 없다.
아내는 물론 주변의 인연들을 생각해보면 어느 한 군데도 갈등의 소지가 없이 그저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하다. 이게 내가 마음공부를 잘 해서일까?
그렇지 않다. 굳이 한 가지 이유를 들자면 적어도 나의 처지나 입장에서 능력 밖의 것에 대한 욕심은 별로 없지만 이런 마음만으로 내가 편안하고 행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은혜롭게도 주변의 여건이 어느 정도 잘 맞춰주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내와 자식들, 그리고 주변의 많은 상생선연들로부터 내가 받고 있는 은혜가 그 얼마나 큰가! 오늘의 행복함은 전적으로 법신불 사은님의 위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끔 걱정될 때가 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여건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점차 변해갈 것이다.
지금은 순풍에 돛단 것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살고 있지만 언제라도 큰 경계를 당했을 때 나의 힘이 부족하면 크게 흔들릴 것이다.
앞으로 그 변함에 따라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도록 마음의 힘을 쌓아야 할 것이며, 매사를 살얼음을 딛는 심경으로 조심조심하며 살아가고 싶다. (2015.6.21)
11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