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하고 있지는 않은가?
원불교 교전에 있는 소태산 대종사님이 직접 제정하신 정전의 분량은 정확하게 71쪽이다. 나는 이 정전의 내용 중 약 37~38쪽 정도를 암기하고 있다. 내가 원불교의 법문을 암기하게 된 계기는 2004년도에 오덕훈련원에서 훈련 중 신앙수행담을 하신 이근수 님이 천도법문(천도품 5장)을 외우는 모습을 보면서였다.
그래서 바로 천도법문을 외우려고 여러 번 읽어 봤지만 외울 수는 없었다. 외우려고 작정을 하고 노력해야 외워졌다. 이렇게 2008년부터 거의 15년 정도 노력하다보니 정전의 주요 내용과 대종경의 일부 법문을 암기할 수 있게 되었다.
전에는 집 부근의 매봉산을 걸으면서 법문을 외웠지만 요즘은 매일 만보걷기를 하면서 암기하고 있다. 작년부터 허리 협착증으로 인한 통증이 있어서 평지를 많이 걸으라는 전문의의 주문에 따른 것이었다.
경산 상사님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법문을 꼭 외우면 자기 것이 된다고 하셨다. 내가 암기하고 있는 법문은 그 내용의 분량이 많아도 한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림처럼 선명하게 보이고, 눈을 감아도 훤히 보인다.
나는 가끔 자신이 원불교의 교법을 잘 공부하는 만큼 세상일을 잘 하고 있는지 여부를 생각해 본다. 비록 법문은 좔좔 잘 외우지만 소태산 대종사님이 부촉하신 법문처럼 말로 배우고 몸으로 실행하고 마음으로 증득하는 데는 아직도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다.
불조요경의 사십이장경 중 제40장에 이런 법문이 있다.
‘부처님 말씀하시되, 사람이 도를 행할진대 연자방아의 맷돌(방아) 돌리는 소같이 하지 말지니, 소가 사람에게 이끌려 몸은 비록 돌기는 하나 마음에는 조금도 이해가 없는 것 같다.’
즉 도를 행하고자 하는 수도인이 그 마음을 진리의 근본에 대조하지 않고 연자방아를 돌리는 소처럼 아무런 생각 없이 형식에 의지하여 도를 행하고, 마음 가운데 실지의 깨침과 정성이 없다면 아무리 용맹정진을 한다고 해도 결코 도를 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좌선을 하고, 경전연마를 열심히 하고, 평지를 걸으면서 법문을 암기하고 있지만 매일같이 반복되는 수행으로 인해 때로는 타성에 젖어 있지는 않은지 한번 되돌아 봐야 할 것 같다. 나도 저 소처럼 하루 종일 아무런 의미도 없이 연자방아만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그래서 법문은 잘 알고 있으나 아는 것 따로, 행동 따로가 아닌지, 좌선은 앉아서 눈만 감고 있지는 않은지, 수행한다는 흉내는 내지만 자신의 행동이나 내면에 아무런 향상도 없이 온갖 요란함과 상(相)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나는 그동안 자신을 위해 매일 108배를 13년 이상 했고, 오직 앞만 보고 열심히 수행정진을 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옆도 한 번씩 돌아보고, 뒤도 가끔 돌아보는 등 주변의 인연들을 살펴보는데 무심하지 않고 그에 적절하게 불공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 같다. (2023.8.19)
그동안 ,중산의 마음일기.를 애독해 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린다. 또 다른 고정란으로 독자들을 만날것을 기대한다.
2월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