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교당 교무
매달 학교에 내야 하는 육성회비나 책값 등을 직접 학교에 내던 시절.
간혹 거스름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친구들이 엄마에게 들켜 혼쭐이 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나에게도 어느 날 강력한 유혹이 찾아왔다. 학교에 책값인가를 가져다 냈고, 제법 많은 거스름돈을 받았다.
같은 마을 친구들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찐빵이 있었다. 나에게 돈이 있다는 걸 알고 있던 친구가 그 돈으로 찐빵을 사 먹자고 유혹했다. 찐빵을 사 먹고 집에 돌아와 거스름돈을 엄마에게 내밀면서 후회가 되었다.
가슴이 콩닥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돈을 세어 본 엄마가 “이상하다 왜 돈이 부족하지?” 찐빵을 사 먹을 때의 용기는 다 어디 갔는지, 사실을 고백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엄마는 범인이 나라는 걸 알았을거다. 그런데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난 이미 양심으로부터 호되게 혼이 나고 있었다. 엄마를 속이는 일은 할 짓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은 난 다시는 그럴 엄두를 내지 못했다. 까딱하면 뿌리 내릴뻔 했던 싹은 다행히도 그렇게 힘을 잃었다.
잔디는 아직 힘을 얻기 전인데, 부지런한 풀들이 벌써 파릇하게 올라오고 있다. 예비교무 시절부터 여러번 일기거리를 제공해 준 고마운 풀이다. 비유가 좀 좋은가. “우리의 마음을 심전(心田)이라 하니, 우리 마음에 수시로 일어 나는 우리의 마음을 살피고 살펴 마음 잡초 제거에 부지런한 마음농부가 되어야 한다”는 요지의 일기를 써놓고 스스로 꽤 괜찮은 감각감상을 얻었다고 흐뭇했었다.
그런데 이후 다른 동지들도 비슷한 감각감상을 얻고 있다는 것을 알고선 뿌듯함이 감소 되고 말았다. 희소성에 따라 가치가 평가되는 기준이 마음공부까지 적용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공기나 물, 햇빛 등등... 한없이 큰 은혜들은 희소성과는 거리가 멀다. 마음의 잡초를 제거하는 마음 공부도 한번의 감각감상으로 끝낼 공부는 아니었다. 숨쉬듯, 물마시듯, 밥먹듯, 놓지 않고 늘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간혹 마음공부를 하며 고쳐야 할 단점에 집중하다 보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고 신바람 나게 해줄 장점마저, 외면 받는 사이 시들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장점 또한 키우기에 공들여 주어야 한다.
논밭의 잡초를 제거하자는 것은 농작물을 잘 기르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엔 어떤 싹이 올라오고 있는가. 무엇을 제거하고 무엇을 키워야 할 것인가. 더욱 부지런 해 져야 할 봄이다.
엄마는 알고 있었다. 막내 딸의 잘못의 싹을 뽑아내기 위한 강한 교육이, 활발하게 잘 키워야 할 좋은 마음의 싹까지도 시들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막내딸의 심전(心田)을 가꾸어준 엄마가 새삼 다시 감사하다.
3월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