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산이 서울에 오신 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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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산이 서울에 오신 뜻은
  • 한울안신문
  • 승인 2024.03.06 21:20
  • 호수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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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인성 서울교구 교화기획위 홍보분과장

 

원기 9년은 교단적으로도 역사가 깊은 해다. 그 해에 불법연구회가 정식으로 발족하고, 만덕산에서 초선을 났으며, 익산에 총부가 건설된다. 그 시작점에 서울방문이 있었다. 
그해 2월 백학명 스님과 내장사에서 불법연구회 창립총회를 하려 했으나 승려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소태산 대종사는 내장사에서의 회상 창립이 좌절된 후 불교의 도움없이 직접 회상을 펴실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그 뜻을 펴기 위한 발걸음을 재촉하셨을 것이다.
그전부터 최도화 선진께서 필시 회상에 도움이 될 인물들이 있으니 서울로 가보셔야 한다고 설득하셨을 것이다. 대종사께서 서울길에 오르신다. 직접 회상을 펴기 위해서 서울이라는 곳도 보셨어야 했다. 최도화 선진이 여성이다보니 서울인연도 대부분 여성이었다. 박사시화 선진을 비롯하여 이곳에서 이동진화, 성성원, 이공주, 김영신 등 수많은 인연들을 만나시게 된다.
처음엔 무시했다. 그러나 몇 마디 대화를 통해 마음에 응어리진 한이나 장차 앞으로 살아가야 할 길에 대한 생각을 놓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는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며 대종사께 다시 찾아오고, 이 회상에 참여하게 된다. 이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나라 잃은 슬픔 속에 독립운동을 하던 분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사람들은 화려한 물질문명 속에서 그것으로부터 오는 환희와 쾌락에 빠져들었다. 마치 지금처럼 돈과 권력이면 잘 살 수 있는 곳이었다. 소태산 대종사는 서울에 와서 그런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본다. 그리고 병든 사회를 진단하고, 그 치료법을 내놓으신다.
소태산 대종사는 물질문명에 끌려다니던 대중들에게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은혜를 말씀하신다. 없어서는 살 수 없다면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사람들은 곧 실망한다. 너무 뻔한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곧 알게 된다. 정법이란 신비하거나 거대한 이론이 아니라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법이라는 것을. 소태산 대종사는 그 은혜에 보은하는 삶을 살아갈 것을 천명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천지보은에 대한 응용무념의 도
부모보은에 대한 무자력자 보호의 도
동포보은에 대한 자리이타의 도
법률보은에 대한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세우는 도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재가출가 모두가 이 가르침대로 보은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소태산 대종사께서 서울에 오신 뜻을 잘 실현하는 길이 아닐까?

 

 

3월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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