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면 더욱 생각나는 곳이 있다. 영·산·성·지.
출가 서원을 하고 영산선학대학에 입학했다. 선배와 지도 교무님들이 ‘성지의 기운’이라는 말을 참 많이 했다. 대종사님과 선진님들의 기운이 어려있는 곳이라 했다. ‘성지의 기운’ 이라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고, 느끼고 싶었다.
물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있었다. “영산 너~무 좋아”
하지만 초발심 서원 충만했던 신입생이 느끼고 싶은 ‘성지의 기운’은, ‘좋다’라는 느낌을 넘어, 특별히 성스러운 그 어떤 기운이어야 했다. 성지의 기운을 느끼고 싶어 대각지와 삼밭재, 정관평의 바람을 맞으며 다녔다.
어느 시인은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라고 했다.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그 시간들, 구할은 영산 바람이 만들어 준 것이었다.
‘이것이 성지의 기운이다’라는 답은 느끼고 찾는 자의 몫이었다. 그저 행복, 삶의 해답, 나태할 때 호된 경책, 한없이 흐르는 참회의 눈물 등등 ….
자유분방하게 살던 늦깎이였다. 해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도 많았지만, 구속스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잠이 부족해 수업 시간에 졸기 일쑤였지만, 알싸한 새벽바람을 맞으며 대각전으로 가는 길은 뿌듯했다. 그것이 성지의 기운이었다.
그렇게 신심 충만, 행복 충만했던, 예비교무 시절을 지나 교무가 되었다.
고백하건대, 늘 행복한 건 아니다. 언제나 구도 열정이 펄펄 끓어오르는 것도 아니다. 이해와 자비심이 충만하여 모두를 품에 안기는커녕, 누군가를 ‘왜 저래?’라는 마음으로 볼 때도 많다.
‘어찌 다행히 이 법을 만나…’ 라는 희열심도 때론 풀이 죽을 때가 있다. 누군가를 마음공부 시킨 내 심신 작용에 대한 아쉬움과 자괴감이 오래 갈 때도 있다. ‘살아 있는 마음이 어찌 한결같을 수 있으랴.’ 스스로 위안해 보지만, 수 없는 생을 넘나들며 물든 마음은 그리 쉽게 빠지지 않을 모양이다.
대종사님께서 대각을 하신 달, 원불교가 열린 달이다. 대종사님께서는 원불교를 개교하신 동기를 ‘일체 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라 하셨다. ‘나는 마음의 낙원에서 살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낙원에서 살고 있다”라는 대답에 자신이 없을 때면 성지의 기운으로 살던 때가 아련해 진다. 영산의 바람이 그리워진다.
그런데, 울도 담도 맘대로 넘나들 수 있는 영산 바람이 어딘들 스며있지 않을까. 내가 느끼지 못할 뿐.
정관평 방언공사 후 제자들에게 “도 이루는 법을 알기만 하면 밥 먹기 보다 쉽다.” 하신 대종사님의 말씀에 희망을 기댄다.
진리적종교의 신앙, 사실적 도덕의 훈련법을 내 주셨으니, 도 이루는 법을 알고 실천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성지의 기운도 우리 안에 있다.
4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