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타원 전시경 서울교구 봉공회장
“제가요? 이걸요? 왜요?” 얼마전 전화 통화를 하며 제가 했던 말입니다.
용건을 마무리하고 전화를 끊으며 ‘이거 뭐지? 내가 왜 이런 말을 입 밖에 냈을까, 생전 해본 적이 없는 말인데’ 하는 생각에 마음이 꺼름칙하던 차에 우연히 통화를 들었던 딸이 한마디 했습니다. “엄마, 그 통화 뭐예요? 요즘 MZ세대들이 많이 쓰는 말이라던데. 설마 엄마가 알고한 것은 아닐 테고. 느낌 참 묘하네”
그 이후 상당 기간 조금의 자책과 함께 숙제처럼 따라 다녔던 이 ‘3요’를 오늘 저는 ‘은혜나눔을요? 우리가요? 왜요?’ 로 바꿔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봉공, 무아봉공!!. 원불교 교도가 되면 많이 듣게 되는 단어 중 하나입니다.
봉공이 무엇일까요? 원불교대사전에서는 봉공을 개인보다 전체 사회를 위하는 것, 곧 사사로운 이익보다 공익을 우선으로 하는 것이라 밝히고 있습니다. 봉공은 공익을 우선으로 한다는 말을 잠시 기억하며 원불교 은혜나눔의 시작을 찾아가보겠습니다.
전재동포구호사업으로 시작
원기30년(1945년), 광복과 함께 선진님들은 세상을 향해 거리로 나섰습니다.
1) 허영의 생활을 안분의 생활로
2) 원망의 생활을 감사의 생활로
3) 동포를 살리기 위하여 우리는 거리로 나간다
는 구호를 가슴에 품고, 식사제공, 의료서비스, 사망자 장례, 한글 보급, 교육사업, 보육사업 등을 통해 원불교는 이 땅의 사회복지의 문을 앞장 서서 열었습니다. 해방 후 해외와 국내에서 유입되는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그들의 쉼터가 되어 주었습니다.
IMF로 은혜의 DNA 확산
이렇게 우리 가슴에서 면면히 숨 쉬고 있던 은혜의 DNA는 IMF 시기에 또 한번 빛을 발합니다. 1998년 4월부터 11월까지 옛 서울회관 광장에서 은혜의 쉼터와 은혜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며 중식 제공 7,393명, 봉사자수 627명, 쉼터 이용은 접수기록자만 2,070명에 달했습니다.
△ 2007년 태안 기름유출사고 때에 전국에서 연인원 1만여 명의 교도님들이 기름제거작업에 동참하였고, 115일 동안 자원봉사자센터를 운영해 12만 여명에게 점심을 공양하고, 간식과 음료수 그리고 작업에 필요한 물품들을 제공했습니다.
△ 며칠전 10주기를 맞은 세월호 참사 당시 8개월간 유가족들과 함께 하며 빨래와 음식 제공, 주변 정리 등의 자원봉사를 통해 아픔을 같이 나누었습니다.
두 대의 급식차량과 한 대의 세탁차량을 무기 삼아 고성 산불 현장, 동해 산불 현장, 장태산 화재 현장, 경주 수해 현장, 서울시 폭우피해 현장, 괴산 수해 현장에 이르기까지 원불교는 재해재난 발생시 누구보다 빨리 현장에 출동해서 이재민에 대한 긴급지원활동을 펼쳐오고 있습니다. 이런 공로로 각종 표창도 많이 받고, 작년에는 대형 급식차량을 1대 더 후원 받아 더욱 기동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럼 원불교의 은혜나눔은 긴급하고 재난적인 현장에만 국한된 것일까요? 짐작하시다시피 그럴 리가 없지요.
△ 벌써 10년을 훌쩍 넘긴 수요일 서울역 노숙인들에 대한 저녁 급식 제공은, 밥과 반찬을 직접 만들고, 배식에 이르기까지 매주 20여명이 넘는 봉공님들의 땀과 정성이 고스란히 담긴 결과입니다. 동자동 쪽방촌 어르신들께 매주 드리는 반찬은 다양한 음식을 접하기 어려운 분들에게 소소한 기쁨을 드리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식사 해결이 어려운 사회적 약자들과 생활고로 힘들어 하는 이웃들과의 나눔을 위해 ‘훈훈한 밥집’을 시작했고, 현재 부산울산교구, 광주전남교구, 경인교구에서 매주 도시락 및 반찬나눔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나눔 실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 매년 현충일, 현충원에서는 참배객들을 대상으로 대전은 국수, 서울은 빵과 커피, 생수를 제공하고, 7, 8월에는 서울역 광장에서 주1회 여름의 무더위를 식혀줄 얼음생수 나눔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튀르키예 지진 이재민을 돕기 위한 아나바다장터인 ‘의류에 새 생명을’ 행사를 통해 지구살리기 실천에 동참하고, 원불교인의 성금으로 조성 중인 튀르키예 한국인 마을에 생필품꾸러미를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 아, 바로 지난 23일에 진행되었던 중요한 은혜나눔을 빠뜨릴 뻔했습니다. 해마다 진행하던 대각개교절맞이 은혜나눔을 올해는 서울교화 백년을 기념하며 서울시내 25개 구 전체에 진행했는데 봄에 햇김치를 먹고 싶어 하는 분들을 위해 시작한 은혜의 김치 규모가 무려 9.5톤, 쌀은 5,500kg에 달했습니다. 모두가 정성을 모아 함께 참여하신 여러분들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인사 드립니다.
은혜나눔을요? 우리가요? 왜요?에 대한 답변
교도님들께 원불교의 은혜나눔 실천을 많이 소개해드리고 싶은 욕심에 숨 가쁘게 달려왔습니다.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은혜나눔을요? 우리가요? 왜요?’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대종사님께서는 파란고해의 일체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려 함을 개교의 동기로 밝히셨고,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사은의 은혜와 보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사은에 대한 보은 감사생활을 하는 것이 바로 불공이 된다는 보은즉불공을 저는 요즘 보은즉봉공이라고 표현합니다. 사은의 은혜를 알고 지극한 감사함으로 보은하리라 마음먹는 것이 곧 공심이고, 이것이 바로 은혜나눔의 실천으로 나타나는 봉공심으로 자라날 것입니다.
교단 제4대를 시작하며 거창하게 이름 붙일 활동이 아니더라도 나의 새로움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할 사명을 띤 우리들이 남보다 먼저 감사와 은혜와 보은을 알았으니 이제 실천의 첫걸음을 내디뎌야 할 것입니다.
원불교의 은혜나눔은 곧 사람이고, 정성입니다. 혼자 보다는 둘이, 둘 보다 셋이 마음을 모으고 힘을 모을 때 더 큰 위력을 나툴 수 있습니다.
제가 봉공회와 인연이 닿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하고 종종 생각해봅니다.
4축2재교도에 불과했던 저는 아마 지금도 신앙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기분 내키는 대로 가족들에게 짜증을 내며 내가 늘 옳다고 주장하는 이기적인 삶을 살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때때로 봉공의 사회적 가치에 대해 무관심해 보이는 교단과 교당에 대한 서운함에 방황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하는 봉공님들의 공심과 열정에 감동하여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정성심으로 대하며, 도움이 필요하다면 열일 제쳐두고 달려나가는 우리 봉공님들, 수많은 어려움을 딛고 원불교의 대사회 은혜나눔을 실천하시고, 지금의 기반을 만들어주신 선배님들께 온 마음을 담아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매일매일 나눔의 새로운 역사를 함께 만들고 계시는 동지들, 앞으로 더욱 찬란하게 은혜나눔을 실현할 후배님이 계셔서 오늘도 행복합니다. 모두가 은혜입니다!!
4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