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그 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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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그 순간에
  • 한울안신문
  • 승인 2024.06.12 20:31
  • 호수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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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타원 안혜연 금천교당 교무

 “가족과 주변 인연들 힘들게 하지 않고 어느날 갑자기 잠자듯이 떠나고 싶다.” 
황혼의 교도님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주 듣게 되는 바람이다. 나 역시 격하게 공감된다. 정성 다해 키운 자식이라도 있다면, 기른 공이 있으니 좀 나을 수 있겠지만, 내 마지막 순간의 번거로움을 누군가에게 길게 맡긴다는 건 참 염치없는 일이다. 내 마지막 모습이 많이 궁금하기도 하다. 생사해탈 공부는 내 할 몫이니 희망은 있다. 그런데 잠자듯이 떠나고 싶다는 바람의 주체인 내 육신에는 이미 업이 깃들어 있을터. 어찌하오리까. 그 업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공부가 더욱 바빠진다.  
명색이 수도의 길에 들어섰으니 마지막 모습이 아주 아주 편안해 보이는 품위있는 이별의 시간이 된다면 좋지 아니하랴. 그리고 교화자로 살아온 삶이니 그래도 제중의 실적은 나투어야 되지 않겠는가. 살아생전 교화하고, 생사해탈한 내 모습에 감동받아 ‘나도 공부해야지’ 결심 굳힌 누군가 있다면 그 또한 좋을 일. 
순간 순간을 잘 살아가면 될 일을 이렇게 부질없이 마지막 순간 운운하는 나를 보신다면 대종사님은 뭐라 하실까. 왠지 기특하다고 하시진 않을 것 같으니, 그저 망상을 접고 공부하고 교화에 정성을 다 할 일이다.
  6월이면 언제부턴가, 대종사님의 마지막 심경을 헤아려 보고 싶어진다. 대종사님의 열반을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던 제자들이었다. 그런 제자들을 바라보는 심경이 오죽하셨을까 싶어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한다. 아주  조금이나마 감히, 나름 대종사님 심경을 알 것도 같다. 
  교단의 미래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으신 듯 하다. “세계 사람들이 이 법을 알아 보고 크게 감격하고 봉대할 사람이 수가 없으리라” 하셨다. “이 회상과 생명을 같이 할 만한 인물이 앞으로도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나리라” 하셨다. 
대종사님은 교단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으셨는데, 교화가 어렵다고 한다. 
부촉품을 보니, 교단의 미래는 걱정하지 않으셨지만, 당신의 말씀으로 배우고 공부할 우리에 대한 걱정과 우려와 당부가 간절하시다. 이 말씀에 대조해 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대종사님의 포부와 경륜을 말로 배우고, 몸으로 실행하고, 마음으로 증득하여 전하고 있는가. 
재색이나 명예와 허식에 흐르고 있지는 않은가. 일심집중으로 성불제중의 외길로 나아가고 있는가.
 법의 해석에만 치우친 구미호가 되진 않았는가. 삼학을 병진하고 있는가. 
일원의 자리를 알고, 실행하고, 전하기에 얼마나 굳게 마음을 세웠는가. 성공할 때까지 중단하지 않고 끝까지 정성을 쉬지 않고 있는가. 
교단의 미래는 생각과 앎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대종사님의 걱정과 우려와 당부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이었다. 바른 길로 끝까지. 

 

6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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