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의 생활속 마음일기 (14) 부자에 대한 선입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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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의 생활속 마음일기 (14) 부자에 대한 선입견
  • 한울안신문
  • 승인 2024.07.10 11:55
  • 호수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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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오기로 되어 있어서 열흘 전부터 은근히 긴장되고 시간 있는 대로 서재의 책꽃이를 정리하고 화장실 거울 청소까지 하며 조심스러웠다. 6월에 결혼할 예정인 신랑신부가 주례에게 인사하기 위해 우리 집을 방문하는 것인데 이전의 신랑신부를 맞이하는 것과는 달리 심적인 부담이 되었다. 신랑이 재벌가사람이고 계열사 젊은 4년차 사장이라니 부잣집 도련님을 평범하게 사는 우리 집에 초대해놓고 뭘 보여 주어야 되고 무슨 말을 해주어야 되나 은근히 신경이 더 쓰였다.
내게 이 주례를 부탁한 신부아버지는 의사인데 은행고객으로 알게 되어 17년간 서로의 인생 상담사로 때로는 우리가족의 주치의를 맡아주어 우리부부와 특별한 관계로 잘 지내오고 있는데, 얼마 전에, 딸의 결혼날을 잡았고 남산 하이야트호텔에서 결혼식을 하는데 팬데믹 상황이라 참석인원이 소수라서 미리 참석여부를 확인한다는 전화가 와서 우리 부부는 주례부탁할 줄은 모르고 당연히 참석한다고 대답을 했더니 딸 주례를 부탁하는 거였다.
그런데 딸이 신랑집에 갔다 오더니 강남의 엄청난 부잣집이라고 놀라서 돌아와 이 결혼 부담되어 못한다고 해 나에게 이 상황과 사위를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고 묻길래, 그 집에서 당신 딸을 며느리로 선택했을 때는 모든 것을 감안해서 결정했을 터이니 돈에 기죽지 말고 의사집안으로서 품격을 보여주고 당당하게 대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신랑이 중학교 때부터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해 한국에 은사님이 없어 주례를 부탁할 사람이 마땅치 않아 신부집에 의뢰를 했고, 신부 아버님은 주례를 부탁해서 흔쾌히 승낙을 했지만 막상 주례를 맡고 보니 재벌집 아들이라는 사실에 혼례에 참석할 분들의 성향이 부담되고 나까지 긴장되었다. 
암튼 원장님이 나를 믿고 주례를 맡긴 것이므로 평소보다 더 꼼꼼이 신랑 신부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메모해놨던 말들을 중심으로 4시간동안이나 우리부부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진지하게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신랑신부가 연예인처럼 이쁘고 모두 명문학교 출신답게 지혜롭고 기품이 있어서 바라보는 우리도 기분 좋고 보람 있는 시간이 되었다. 
우리 부부가 어떻게 살면 행복한 부부생활을 할 수 있는지 알려주고자 나름대로 성의껏 얘기하는데 신랑신부가 열심히 경청해주어 더 신나게 진지하게 구체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다. 신랑신부를 만나기 전 긴장했던 것과는 달리 막상 대하니 여느 신랑 신부처럼 편하게 대할 수 있었다.
내 마음 속에 부자와 보통사람에 대한 차별심이 존재하여 긴장하고 준비에 더 신경 쓰였지만 막상 만나고 보니 그저 33세의 청년으로 결혼이라는 엄중하고 긴 항해의 출발점에 서 있는 여리고 설레는 마음을 가진 젊은이일 뿐이었다. 
예전 내가 은행 강남영업본부장 시절에 명예지점장 모임이 있어서 강남부자모임에 가끔 초청되어 가까이 지내면서 강남부자에 대한 편견이 많이 깨졌다. 어느 분야에서나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의외로 겸손하고 호기심 많고 남의 말을 경청하고 배우는데 게으르지 않으며 배려할 줄 아는 것이었다. 지방에 3박4일 부부동반 여행을 하며 사모님들도 함께 만나고 그 후에도 몇 번 봐도 그 분들도 대체로 검소하고 소탈하고 마음 따뜻한 분들이었다. 물론 우리가 주거래은행 본부장이어서 예우를 해줬을 수도 있지만 어른 성품이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번 주례를 하며 나는 부자에 대한 선입견을 좀 더 극복하고 요란함 없이 인생선배로서 새 출발하는 신랑 신부에게 차분히 조언을 해줄 수 있어 보람이 있었다. 그들과 함께 행복했으며, 더구나 아내가 옆에서 간혹 내 말을 거들어 주고 힘을 실어주어 아내의 존재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고마웠다. 

 

 

7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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