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줄거리
루이는 유명 작가이다. 고향을 떠난 지 12년만에 가족들이 사는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어머니 마르틴, 아직까지도 화가 나 있는 형 앙투안, 누구보다 그를 환영하는 여동생 쉬잔 그리고 처음보지만 미소로 그를 맞이하는 형수 카트린. 서먹서먹한 만남이 이루어지고 루이는 무슨 말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 그들의 만남은 이렇게 평행선처럼 끝나고 말 것인가?
‘단지 세상의 끝’은 한 자리에 모인 가족들이 각자의 상처로 인해 서로 다른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보며 소통하지 못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리는 드라마이다. 가까이 있지만 너무도 멀리 있는 듯한 그들의 관계를 절제된 촬영법과 절절함을 느끼게 하는 배우들의 대사와 연기 그리고 상황을 강조하는 삽입곡과 효과음 등으로 표현한다.
12년만에 재회한 루이의 가족은 식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그 짧은 3시간 안에는 재회의 기쁨과 슬픔, 분노와 원망의 감정이 회오리치기 시작한다. 화면에 가득찬 등장인물들의 고양된 표정이 인상적이다.
연극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서로 대비되는 성격의 인물들이 자신의 말만할 뿐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하는 관계의 불협화음을 잘 보여준다.
영화에서 주인공 루이의 플레쉬백을 통한 과거 모습 외에는 각 인물들의 과거를 알려주는 내용은 보여지지 않는다. 각 인물의 옛 사연은 지금 이 순간 이들의 모습을 판단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감독은 선입견은 타인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바라보는데 장애물이 될 뿐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사랑한다”는 대사는 그래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는 행위를 그만두고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한다”는 말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세 시간의 짧은 만남이 끝나고 루이는 그가 해주고 싶었던 말을 곱씹으며 집을 나선다. 그런 그 앞에 갑자기 환상처럼 참새가 나타나 어지럽게 날다가 바닥에 떨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숨을 쉬는듯한 그 새의 클로즈업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박제되어 있던 시계 속의 새가 집 모양 시계에서 벗어나 짧게 나마 살아 날았다는 것은 여러 의미로 해석되어질 수 있겠다.
이제는 모두 훌훌 털어버리고 추억도 아픔도 함께 했던 가족이라는 틀에서 벗어난 주인공의 모습이 아닐까?
가족이라는 인연은 때론 좋을 수도 때론 나쁠 수도 있을 것이다. 보통 그런 관계를 선연 또는 악연이라고 만 판단하는데 멈춘다. 그러나 원불교인으로서 중요한 것은 그 관계를 내가 은혜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8월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