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의 생활속 마음일기 (18) 벌초와 시제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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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의 생활속 마음일기 (18) 벌초와 시제음식
  • 한울안신문
  • 승인 2024.08.28 15:03
  • 호수 1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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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 박영호 중곡교당 교도

임실군 신안리 박씨 종중회원은 8촌지간으로 19명이다. 내가 회장을 맡은 지 5년이 되었는데 년중 가장 큰 행사는 벌초와 시제주관이다. 그런데 벌초에는 6명 정도 참석하고 시제에는 8명 정도만 참석하는데 생업에 매여서 시간을 못내는 사람이 있고 건강이 안 좋은 사람도 있어서 애로가 많다. 
작년 벌초는 9월에 6명이 참석하여 20기를 했다. 날씨는 덥고 예초기에 돌이 튀어 위험한데다 하루종일 일을 하니 무척 힘들다. 부모님과 조상님은혜를 생각하여 보은의 마음으로 하지만 나이가 70살이 넘으니 힘에 부친다. 보은한다고 말은 쉽게 하지만 육체를 써서 보은하는게 지극히 어렵다는 것을 일을 할수록 실감하며 우리 봉공회원님들의 노고가 새삼 크게 느껴진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먼 길을 혼자 운전하고 가서 준비물 사고 현장에 투입되면 9시다. 12시까지는 그런대로 할 만하지만 점심 먹고 오후에 일하다 보면 손발에 쥐가 나기 시작하고 더위와 피로에 탈진한다.
이번 참가인원은 6명인데 2명은 주말에 따로 한다고 해서 4명이 시작했는데 임실에서 중장비일을 해서 가장 일 잘 하는 1명이 시작하자마자 호출이 와서 가버리고 나이든 3명만 남았으니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원망심이 나올 만한데 셋이서 예초기 2대를 번갈아가며 메고 자발적으로 묵묵히 열심히 일한다. 다행히 매우 긍정적이라 불평 한 마디 하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인지 세 집이 모두 가정적으로 복을 많이 받고 산다. 건강하고 부부간에 사이좋고 자녀들도 잘 나가고 있다. 그 중에 한 명은 창원진동교당을 맡아 운영하고 있는 박영훈원무인데 교당 공중사도 바쁠 텐데 벌초와 시제에 꼭 참석한다. 
공중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원망하지 않고 감사생활을 하는 사람은 비록 몸은 고달파도 더 많은 복을 누리고 산다. 그게 세상 이치다. 그래서 더욱 공중을 위해 더 일하게 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하니 더 복받는 선순환이 온다.
벌초할 때보니 한쪽 산의 묘는 말짱한데 다른 쪽 산의 묘는 멧돼지가 파헤친 걸 삽으로 대충 보수해놓아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되겠어서 논의해보니 봉분없이 평장으로 하거나  납골묘를 조성하자는 의견이 있다. 조상님 묘관리도 지금 우리 때까지지 다음 대부터는 자손들의 관심이 없고 이 먼 전라도까지 벌초하고 성묘하러 올 사람도 거의 없으므로 손이 가지 않는 방법을 모색해야 된다는 것이 지배적 의견이다. 
우리나라가 다종교사회가 되었지만 그래도 유교전통의 조상숭배의식은 유지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인데 앞으로의 일은 우려된다.
시제준비도 예전에는 조상숭배를 직접 조상신을 모신다고 생각하여 경동시장에 몇 번이나 가서 최고로 크고 좋은 과일과 생선... 등 제물을 사다가 어른들은 연로하여 못하시니 시집간 여동생까지 동원하여 많은 전을 부치고 음식 준비하느라 북새통을 이루고 지극정성을 들여 준비했는데 내가 종중회장이 되고 나서는 임실시장 반찬가게에 부탁하여 1상에 35만원씩 2상을 맞췄더니 상석에 다 차리지 못하고 별도 상에 올려놓아야 할 정도로 가짓수와 양도 많다. 향. 초. 물. 경주법주 심지어 냅킨까지 제사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박스에 나눠 담아주어 산에 가서 펴놓기만 하면 되고 전문가가 만든 음식이라서 맛도 있어 엄청 편리하고 회원들 반응도 매우 좋다. 
하지만 시제 끝나고 남은 음식을 처치하기 힘들다. 참석자도 많지 않지만 가져가려는 사람이 없어서 난감하다. 요즘은 종교적 성향이 다른 집들이 시제음식을 먹으려고 하지 않아 서로 사양하고, 차가 없으면 가져 갈 수도 없어서 희망자에게 나눠주고 남은 음식은 어쩔 수 없이 내 차에 싣고 와서 집냉장고에 보관 처리하는데도 한참 걸린다. 또 문제는 시제음식을 집사람과 둘이서 몇 날 며칠 먹는 것도 큰 일이다.  
돌이켜보면 음식이 귀하던 시절에 조상님 제사에 평소 먹을 수 없던 각종 생선과 전, 해산물, 나물이며 과일…. 등 귀한 음식들을 제사상에 올리고 후손들이 그 때라도 영양결핍을 해소하라고 비싼 돈들여 갖은 음식을 장만했는데 이제는 남은 음식이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그래도 다행히 아내가 평소에 남이 준 음식을 귀하게 여기고 맛있게 잘 먹어줘서 매우 감사한 일이다. 음식을 귀하게 여기는 우리부부에게 천록이 내려 귀한 음식이 많이 생긴다고 생각하니 이것도 감사의 선순환이지 싶다.

 

8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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