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가부장적 가족을 위한 원불교적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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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 가부장적 가족을 위한 원불교적 전망
  • 전재만
  • 승인 2002.06.28 0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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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화 교무


부부동권, 남녀동권, 자력양성
가부장제란 한 가정에서 장자가 가계를 이어가는 가장이 되
고, 그 가장이 중심이 되어 가족내의 모든 결정권과 주도권
을 갖는 가족문화를 말한다. 이러한 장자중심의 가족문화는
성별 역할론과 부계 혈통제를 정당화하면서 여성의 순결이데
올로기, 현모양처 이데올로기, 모성 이데올로기 등의 여성을
통제하기 위한 기제들을 고안하게 되었다. 이러한 가부장제
가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서는 남녀차별, 반상차별, 적서차
별, 종족차별 등의 사회계층을 이루면서 지배와 종속의 수직
적 인간관계를 형성하게 하였다. 이렇게 남자 어른 중심의
가족문화가 가부장제의 기초가 되고, 가장 가까운 부부관계
가 종속관계가 되어진다. 사실 인간차별 중 부부관계가 가장
근원적이며 가장 널리 퍼져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었으며, 상
하관계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
주화운동을 비롯하여 노예해방운동 등 각종 차별로부터 일어
난 인간해방운동이 전개되면서도 여성의 인권 문제는 가장
늦게 제기 되었다.
소태산은 사회의 병과 가정의 병을 둘로 보지 않았다. 그리
고 부부관계의 문제가 사회전반의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상
극의 고리와 깊이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그는 간파하였다.
부부중심 가족을 유심이 보아야 하는 이유는 혈통 중심의 가
족의 고리를 끊어내는 모색이 여기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
다. 소태산은 평등과 평화의 인간관계를 이루는 첫 과제를
부부평등으로 보았다. 부부권리동일은 소태산의 사회변혁 사
요 가운데 첫 조항이다. 1920년에 인생의 요도로서 처음 발
표된 「사요」는 부부권리동일(夫婦權利同一), 지우차별(智愚
差別), 무자녀자타자녀교양(無子女者他子女敎養), 공도헌신자
이부사지(公道獻身者以父事之)이다. ‘부부권리동일’은 1932
년 『보경육대요령』을 발간하면서 ‘남녀권리동일’로 그리
고 현재 「원불교 교전」에서는 ‘자력양성’으로 고쳐 남녀
차별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차별제도를 넘어서도록 그 의미
를 확대하였다. 부부권리동일을 사회의 남녀권리동일을 이루
기 위한 기초로 보았고, 남녀권리동일은 남녀가 서로 의존생
활을 버리고 자력생활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것으로 인
권평등을 위한 기초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소태산 사상의 현대적 의미
소태산 사상은 후기 근대적 상황에서 가져야 할 태도와 문화
와 감정을 논하고 있다. ‘동일자의 복제’가 아니라 ‘다양
성의 조직화’이다. ‘고립된 부부애정 중심의 낭만적 핵가
족’이 아니라, 공동체를 향한 ‘열린 가족’, ‘부부동지애
적 가족’ 그림이 사은 사상에 담겨져 있는 것이다. 일원사
상은 ‘패권주의적 이분법’을 극복해야 함을 또한 강조하고
있다. 남성적 진리 인식의 방법, 곧 구체성보다 추상성에 우
위를 두는 것에 대한 거부도 찾아볼 수 있다.
당시 대부분의 선각자들이 신분제 타파를 주요 과제로 삼고
반상관계를 중심축으로 사고하였던 반면 소태산은 남녀관계
를 사고의 중심 축으로 놓았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바로 이
선택 때문에 동시대에 나온 다른 사상들이 상당히 시효를 상
실하고 말았지만, 소태산의 사상은 여전히 급진주의를 유지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태산의 절대타자를 인정하
지 않는 일원상 철학과 은(恩)사상, 체험과 구체적 삶에의 참
여를 전제로 진리를 인식하려한 인식론, 그리고 성스러움과
세속적인, 이분법을 넘나드는 방법론은 구체적인 삶과 체험
과 관련이 있고 특히 몸과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알 수 있
다. 몸에 대한 성찰과 긴장감을 놓치면서부터 종교의 영성은
삶과 노동과 공동체, 성줜性)으로부터 멀어졌다고 본다, 이
런 측면에서 가정을 종교적 진리를 이식시키는 장으로 인식
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 자체가 영성수해의 장이자 진리인식
의 장으로 상정한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가지 못한 길 그러나 가야만 하는 길
자녀가 둘이면 한 자녀는 아버지 성을 따르고 다른 한 자녀
는 어머니 성을 따르라는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 여전히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순결 이데올로기를 유지시
키고 있다는 점은 교리와 불일치하는 교단 조직사의 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의 혼란스런 역사와 무
관하지 않다고 보여진다. 종교가의 교리적 도그마와 말씀(경
전) 중심주의는 현실 가족의 변화를 수용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에게도 윤리적 경직과 죄의식을 심어주
고 있다. 가족, 성, 그리고 여성 문제는 종교가 정말 참회해
야 하는 대목이다. 물론 그간에 가족치료나 가족복지에서 종
교는 상당한 역할을 담당해 왔지만, 앞으로 새로운 가족문화
운동에 있어서 기대되는 종교의 역할을 제시 해 본다면 ‘함
께 살아감’에 대한 모델이 없는 상황에서 종교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같이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공동체적 모델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또 한가지는 근대적 가부장제의 붕
괴를 직시하고 부계혈통주의의 허구성을 인식해야 하는 시점
에서 무엇보다 종교 안에서 필요한 것은 차이와 다름의 감수
성을 하명하는 일이라고 본다. 다양한 가족들의 출몰을 목도
하면서, 여러 형태의 가족들이 사회 안에서 건강하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열린 영성을 우리가 도와야 한다. 가족의 변
화 앞에서 두려워 하지말고 서로 쓰다듬으며 혈연말고도 누
구와 어떻게 함께 살 것인지를 고민하고 해결해 주는 신앙
수행 공동체로, 나눔의 장인 밥상 공동체인 교회와 성당, 절
과 교당으로 거듭나자. ‘텅빈조개 껍질 가족’이라고 최근
한 사회학자가 2002년 우리 가족의 자화상을 표현했다. 껍데
기여 가라. 호주제여 가라, 멀리가라. <정리: 전재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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