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형준의 지구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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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준의 지구촌 이야기
  • 한울안신문
  • 승인 2006.08.2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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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기 힘든 전쟁의 상흔


요즘 해외의 주요 언론매체를 장식하는 뉴스는 이스라엘과 레바논간 (정확히 말하면 헤즈볼라와)의 전쟁이다. 유엔이 만장일치로 결의안을 통과해 휴전을 시켰지만 이스라엘이 다시 폭격을 시작했고 사태는 가히 점입가경이다. 이유야 어떻게 됐던 서로를 죽고 죽이는 전쟁은 보는 이를 참으로 안타깝게 만든다. 인류역사는 전쟁과 살육으로 점철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피로 쓰여졌고, 유엔이 창설된 가장 큰 이유도 2차에 걸친 세계대전으로 전 세계가 피폐화되면서 다시는 이런 비극을 되풀이 하지 말고 전쟁을 막아보자는 의도였었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는 인과의 진리, 아니 너무나도 명확하고 단순한 이 역사의 교훈이 아직도 사람들에게 완전히 각인되지 않았는지 지금도 형태는 바뀌었지만 지구촌은 여전히 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주에는 한 주 동안 베트남 국경 근처로 출장을 다녀왔다. 이 곳은 1964년부터 73년까지 인도차이나 전쟁 때 “호치민 트레일”로 불렸던 곳으로 남부 베트남을 공격하기 위해 베트콩들이 라오스 내륙지역을 통해 대규모 이동했던 곳이다. 미국은 이들의 침투를 막기 위해 이 지역을 융단으로 내리깔 듯 폭격을 했고 (그래서 융단폭격이란 말이 생긴 모양이다.)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당시 인구 3백만이던 라오스에 3백만 톤의 폭탄을 쏟아 부었다니 라오스 사람 1명당 무려 1톤의 폭탄을 떨어뜨린 셈이다. 이 처참한 상흔은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별로 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아니 이 지역에는 폭탄 잔해가 이 곳 사람들의 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아직도 이 지역 사람들은 우리나라 60년대 이전처럼 극심한 “보리 고개”를 겪고 있는데, 가장 큰 이유가 곳곳에 산재한 불발 폭탄들로 생계활동이 제약을 받고 농지가 턱없이 부족해서 그렇단다.
그래서 필자가 일하는 WFP는 라오스 정부 및 NGO들과 이 폭탄제거 작업을 하고 폭탄이 제거된 지역에 농지를 개간하도록 도와주는 사업을 하고 있다. 우선 불발 폭탄제거에 전문 지식을 갖고 있는 NGO가 마을 사람들을 감독해 폭탄 투하지역의 수풀을 제거한 후, 장비를 동원해 아주 정밀하게 탐지해 폭탄이 발견되면 수거하여 제거하게 된다. 그래서 폭탄이 완전히 제거된 지역은 토질이 좋으면 농지로 개간하고 그러지 않으면 다리나 길로 만들거나 양어장을 만들어 주민 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워낙 민감하고 어려운 작업이라 진도가 계획대로 잘 나가지 않는다. 우리 뇌리에는 거의 잊혀져 가고 있는 베트남 전쟁의 상흔이 이 곳에는 여전히 남아 사람들을 두고 두고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지나가며 본 한 가옥은 포탄껍질로 울타리를 쳐 두었고, 다른 집엔 고철로 팔려고 모아놓은 포탄껍질 고철덩어리들이 보는 이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하늘에는 전사자 시체를 찾기 위해 아직도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는 미군의 헬기소리가 요란하다. 세월이 흐르면 슬픔도 고통도 잊혀진다지만 유독 전쟁만은 피해자도 가해자도 상처를 씻기엔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유엔이 처음 창설되었을 때의 인류의 소망처럼 지구상에 전쟁이 완전히 사라지는 그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다.
유엔세계식량계획 (WFP)
기니비사우 프로젝트 총담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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