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연한 부정부패
이제 도착한 지 두달 남짓한 라오스의 모습은 한국의 80년대 초반과 많이 닮은 것 같다. 거리의 전반적 분위기라던지 사람들이 사는 모습, 의식 수준까지도 그런 것 같다. 물론 세계화의 영향으로 인터넷과 휴대폰은 이 곳에서도널리 사용되니 나라간의 발전격차를 획일적으로 긋을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처음 받은 이 나라의 인상은 국민의 대다수가 불교를 믿고 생김새도 우리와 많이 비슷하고 사람들이 대체로 조용하고 순박한데다 거리 모습까지 우리나라 예전과 비슷해 참 마음이 푸근한 나라라 생각했는데 살다보니 분통이 터지는 일도 한 두번이 아니다. 특히 공무원들의 만연한 부정부패는 도가 지나치다고 느낄 정도이다.
7월 중순에 유엔개발계획 대표가 떠나며 내어 놓은 차를 하나 구입했는데, 근 두 달동안이나 차 번호판이 나오지 않아 차를 사용할 수가 없었다. 특히 필자는 라오스 제 2도시인 팍세에 근무하기 때문에 소관부서인 외무부에 자주 갈 수도 없어 WFP 직원을 매일 같이 보냈지만 되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이 “조금만 더 기다려봐라”였다. 대중교통도 제대로 잘 되어 있지 않아 퇴근 후와 주말에 불편한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출장차 수도에 갔을 때 외무부에 직접 찾아갔더니 아니나다를까 내 서류는 산처럼 쌓인 서류더미사이에서 ‘세월아 네월아 하며’ 잠자고 있었다. 사람을 매일 보냈지만 담당자가 나중에 오라하면 그만이었고, 필자가 직접 가지 않았더라면 몇 달이 더 걸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직접 고위 간부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사정을 하니 그제서야 서류를 결재해준다. 직접 갔으면 하루면 될 일이 두 달이나 아무 이유없이 지체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번호판을 받으러 보낸 기사가 또 매일같이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왔다. 차번호판 재료가 떨어져서 언제 나올지 모른단다. 그래서 급기야는 자기돈으로 얼마를 찔러주니 번호판을 하나 주더란다. 말도 안되는 이유를 붙여 자기 주머니를 채우려는 공무원들의 횡포에 기가 막혔다.
한 번은 생필품을 구입하러 태국으로 넘어가는데 국경 이민국 공무원이 주말은 초과근무를 한다면 돈을 내란다. 필자가 유엔여권을 보여주며 영수증을 요구하자 그제서야 말을 바꾼다. 당신은 국제 공무원으로 자기 나라를 도와주러왔으니 특별히 봐준다는 거다. 사실 그가 애초에 요구한 초과수당은 공식적인 것이 아니어서 영수증을 발급할 수가 없어 그랬을 것이다.
얼마전에는 또 다른 실망스런 일을 목격했다. WFP가 나눠주는 식량을 유엔과 함께 일하는 해당 공무원과 마을 이장이 짜고 그 마을 할당량 23톤중 10톤을 자기들이 가로채 팔아먹어 버린것이었다. 필자는 즉시 정부인사들을 불러 회의를 소집해 떼먹은 식량 10톤을 WFP에 반환할 것을 요구해 식량을 받아냈지만 사회 곳곳에 만연한 부정부패에 정말 혀가 내둘릴 지경이었다.
공무원 월급이 한달에 3만원도 안되는 현실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나 생활에서건 일에서건 사람을 믿지 못하고 의심을 해야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WFP(유엔세계식량계획) 라오스 구호 및
복구 식량 지원 프로젝트 총 담당관
저작권자 © 한울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