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인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방송 프로그램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CBS의 ‘Survivor’와 ABC의 ‘The Bachelor(ette)’가 아닌가 한다. 미국판 ‘무한도전’ 혹은 미국판 ‘1박2일’이라고 할까?
전형적인 리얼리티 쇼인 CBS의 ‘Survivor’는 5만대 1의 경쟁을 뚫고 선발된 남녀 20명이 무인도나 밀림에서 쉴 곳도 먹을 것도 제대로 없이 한 달 넘게 치열하게 경쟁해 승자를 가리는 게임이다. 남태평양, 태국, 중국, 아마존의 오지를 무대로 각종 경기 결과와 참가자들의 투표를 바탕으로 한 명씩 탈락시켜 최종 승자를 가린다. 한 편당 15회 정도로 황금시간대에 방영되는 이 프로에선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이 그대로 전달된다.
ABC 방송의 인기 프로그램인 ‘The Bachelor(ette)도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한 명의 남성이 혹은 한 명의 여성이 수천 명의 경쟁을 뚫고 선발된 10여명의 여성이나 남성과 데이트를 한 후 최후의 파트너를 결정하는 프로그램이다. 어디랄 곳도 없이 미국인들은 모여 앉으면 전주에 출연했던 인물들을 화제로 올린다. 이 두 인기 프로그램은 진행내용과 소재는 다르지만 모두 일종의 서바이벌 게임 방식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이 두 프로그램이 인기있는 비결은 극한 상황이나 어려운 결정을 해야할 상황에서 주인공들이 적나라하게 노출하는 심리적 갈등과 고뇌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특히 후자에서 남녀간의 드라마틱한 애정행각과 밀회의 장면은 짜릿짜릿하다. 그리고 등장 인물간에 보여주는 심리적 갈등과 감정의 변화는 현재와 과거의 내가 경험했던 유사함과 반전을 그대로 재현시켜준다.
이방인의 눈에 비치는 이들 인기 프로그램은 오늘날 미국사회와 미국인들의 삶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이들은 철저히 경쟁적이고 최후의 승리를 예찬한다. 비록 정감은 없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모두 깨끗이 승복한다는 점에서 미국적이다.
승자와 패자가 모두 초대되는 후속 방송에서 그들은 아직도 눈물을 흘리지만 내려진 결정과 결과에 대해서는 모두 깨끗이 승복하고 상대방의 행복을 기원한다. 이 또한 한국인의 정서로서는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방송작가와 PD가 미국식 교육효과를 염두에 두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방인의 눈에 비친 이들의 교육적 효과는 분명히 있다.
여기에 비해 요즈음 한국의 방송에서 인기있는 MBC ‘무한도전’과 KBS의 ‘1박2일’ 프로그램은 경쟁은 있으나 필사적이지 않고 코믹하지만 여유가 있어 좋다. 어느 정도 반칙과 편법도 통용된다. 유재석과 강호동 팀장은 다소 어설프고 무너지는 것이 시청자들을 공감시키는 이유이다. 그렇지만 필자가 두려워하는 것은 언제까지 이런 류의 프로그램이 한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이다. 시청률은 그 사회의 정서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날로 각박해져가는 오늘날 우리들의 삶이 어느덧 최후의 생존자 게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삶의 태도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이미 미국은 그 단계에 들어가 있다.
최후의 생존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이미 우리사회에도 짙게 깔려있다. 경제사정이 나빠지면 나빠질수록 체감해야할 두려움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광화문 촛불집회가 쉽게 끝나지 않는 하나의 이유도 여기에 있는 듯하다. 물질은 기하급수적으로 개벽하는데 정신은 따라잡기 어렵다. 뒤처지고 있는 정신개벽이 더욱 필요한 시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