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인들에게 배운 기다림과 여유로움
인도인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나름대로 영성이란 무엇인가를 새삼 생각하게 하는 계기들이 있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영성 혹은 영성적 삶이 의미하는 바 혹은 영성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생각해 보면, 삶에 대한 태도나 현대 인도의 스승들이 말한 라이프스타일이라고 여겨진다.
사이바바의 동상과 무덤에 참배하기 위해 수천만리를 불고하고 온 수십 혹은 몇백만의 신자들이 수시간씩 기다려야 겨우 4-5분간 참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서두는 기색도 없이 여유롭게 기다리는 모습과 차분한 가운데 느껴지는 열정에서 인도인들의 영성이 무엇인가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하루는 가게나 개인들의 가정집이나 아무도 문을 잠그지 않아도 도둑이 없다고 하는 마을을 보고 싶어 가게 되었다. 여러 사람이 모여 합승택시를 타고 가면서 만난 한 청년은 인터넷 분야 일을 하다가 실적이 좋아 호주로 스카웃되어 가게 되었는데, 호주로 떠나기 전에 자기에게 주어진 행운에 감사드리기 위해 사이바바에게 참배하러 왔다고 했다. 이방인들에게는 자칫 인도인들의 사이바바에 대한 열정이 미신처럼 지나친 맹신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 청년을 보면서 영성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의 행운에 대해 자만심이 아니라 겸손한 마음으로 감사할 줄 아는 그 마음 역시 영성이 아니겠는가?
인도를 떠난 후 다시 인도를 방문하였을 때 남인도를 다시 가게 되었다. 그 때 인도인 아들이 동행을 하여 필자를 안내하게 되었다. 도착하자마자 아들의 친구에게 전화가 왔는데 용건은 델리시에서 운영하는 요가학교에서 요가 교사를 구하는데 아들만큼 적합한 사람이 없으므로 틀림없이 채용될 것 같으니까 바로 응시하라는 것이었다. 사실을 알고 나는 괜찮으니 바로 가라고 하였으나 아들은 델리로부터 수천리 떨어져 가장 빠른 비행기로 가도 시간에 도착하기 어려우니 더 이상 생각하지 말고 필자가 하고자 한 일에만 관심쓰라고 한다. 그러나, 솔직히 아들이 안정된 직장을 갖고 결혼도 해야 할 처지임을 아는 필자는 몹시 마음에 걸렸고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마음이 편치 않은 필자에게 아들은 그 직장이 자신에게 인연이 아니니 이렇게 어긋나는 것이고 차후 다른 기회가 얼마든지 있을 것이라고 위로하였다. 원망도 하련만 아까워하는 기색도 없고 위로까지 하며 여유있게 대하는 아들을 보며 이것이 영성인가도 생각하였다.
인도인 가족집에 처음 머물 때였는데 인도인의 식사시간이 나와는 너무 달라 곤란을 겪을 때였다. 처음에는 안주인인 친구가 만들어 주는 음식이 맛있기도 하거니와 정성껏 해주는 성의를 생각해서 권하는 대로 먹고 시간도 가능한 그들과 맞추려고 하였다. 그런데 2-3일 지내니 몸에 무리가 되어 식사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필자의 사정을 알고는 그 때부터 식사시간을 조정하는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하는 문화가 있는 반면에 개인의 특수사정을 그럴수도 있다는 이해심으로 여유있게 대하는 태도가 마음에 깊이 들어왔다.
친구인 안주인은 언제나 서둘거나 조급해 하는 법이 없으며 자녀를 키우는데도 보면 아이들의 의사를 절대로 존중한다. 아이들의 대모(divine mother)인 필자는 가끔 아이들에게 충고를 하는 반면 친부모는 다 아이들이 자기의 인생이니 자기가 알아서 잘 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인도에서는 관공서 특히 비자문제로 외무부에서나 은행이나 어디든지 항상 오래 기다려야 한다. 비자문제로 외무부에 들리면 4-5시간 기다리는 것은 그래도 다행이다. 은행에서 번호표를 받아서 기다리는데 컴퓨터가 멈추어 시간이 지연되는 일은 빈번하고 그러다가도 점심시간이 되면 창구하나만 남고 다 들어가 버린다. 그날따라 사람을 만날 약속을 해 둔 처지라 초조해 하는데 그나마 필자의 차례가 되어 직원에게 가는데 마침 연세드신 분이 보이니 ‘시니어’를 먼저 봐 준다고 나를 기다리게 하였다. 필자가 지금 시간이 급하니 먼저 보게 해달라고 하였더니 걱정말고 조금 기다리기만 하면 되지 않냐고 필자의 요청을 거절했다.
빨리 빨리에 길든 한국인의 기질에 거슬리기는 했지만 생각해 보면 세상에 얼마나 어려운 일이 많은데 이것은 단지 조금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가장 쉽고 단순한 일이었던 것이다. 여유있게 기다릴 줄 아는 인도인들의 심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 기다림은 신에 대한 믿음,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진리에 믿음에 의한 것이 아닐까 싶다. 모든 것은 개인의 안달이나 욕심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섭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니 모든 것을 신에게 혹은 자연에 혹은 진리에 맡기고 기다리는 여유, 그리고 영원한 진리를 믿기에 전혀 서두를 것이 없는 즉 오늘 안되면 내일하면 되고 이생에 안되면 다음 생에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여유로움을 인도인에게서 느낀다. 필자가 처음 인도에 가서 느낀 편안함이나 고향같은 느낌은 바로 인도인들의 이런 영성의 분위기 때문이지 않았나 싶다.
생각하면 인과의 이치를 배우고서 타인에게 약간의 선의를 베풀고 그 댓가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실망하고 원망하는 마음이나 자신의 노력은 조금하고서 그 결과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안달하거나 자포자기하는 것은 진리의 문턱도 밟아 보지 못한 마음이 아닐까 싶다. 더 나아가 댓가나 결과를 바라고 하는 행위자체가 벌써 오염된 것으로 올바른 수행심은 아닐 것이다. 무엇이 수행인가 그리고 무엇이 올바른 신앙인가를 말한다면 我相을 비롯한 四相과 탐진치를 완전히 놓아버리는 것이 신앙과 수행의 출발이자 결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