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시골을 다녀왔다. 그곳은 아직도 19세기였다. 고골리나 톨스토이가 풍자해 마지않았던 관료들이 고스란히 살아 있었다. 면사무소 같은 곳에 가서 필요한 서류를 작성해 제출하면 끝나는 단순한 일이었는데 그 일처리를 위해 무려 이틀 동안 줄을 섰다. 잠깐 가서 물어보면 될 줄 알았더니 뭘 하나 물어봐도 줄을 서야 하고, 복사를 하려해도 복사집을 찾아 줄을 서야 하고, 등록비 역시 은행에 가서 줄을 서서 지불한 후 그 영수증을 제출하기 위해 또 줄을 서야 했다. 내 생각으로는 같은 장소에서 한꺼번에 처리해도 좋을 일들을 여기 저기 돌아다니게 만들어 놓았다.
게다가 더 경악할 일은 그 사람이 복사를 하고 영수증을 가져올 때까지 다음 사람을 받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에 한 사람 꼴로 일처리를 해주었다. 내가 필요해서 시작한 일이라 부글거리는 속을 눌러 참으며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고 애를 써 본다. 한 사람이 해도 될 일을 대여섯 사람이 나눠서 하니 러시아는 실업률이 낮은 걸 거야… 라는 생각까지 해본다. 오후 4시가 되니 수십 명이 줄을 서 있어도 번호표도 주지 않고(원래 그런게 없다고 한다) 문을 닫아버리는 데에는 참을래야 참을 수가 없다.
다음날은 새벽에 길을 나서 문 열기 한 시간 전에 도착했는데 여전히 줄이 길다. 첫 번째로 줄 서 있는 할아버지께 여쭈어보니 새벽 5시 반에 도착했다 한다. 존경심이 절로 인다. 한 이틀 같이 줄을 서다보니 동료애가 생기는지 서로 챙겨주고 각자의 사연들을 풀어놓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이건 19세기에서 18세기로 점점 후퇴를 한다.
소비에트연방이 무너진 후 국가소유의 공장이나 농장을 구성원들에게 불하해주는 사유화정책을 실행했었다. 수십 헥타의 집단농장 땅을 기여도에 따라 구성원들에게 나누어주었는데 동네에서만 서로 알 뿐 읍에 있는 국가토지대장에 등록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근래에 법이 바뀌어서 국가에서 발급하는 토지측량증서와 주택도면이 없으면 소유주로 인정되지 않아 유산으로 물려줄 수도 없고 매매할 수도 없게 돼 버렸다. 평생을 농사짓고 살았던 땅이 문서가 없다는 이유로 자기 소유가 아니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고 부랴부랴 문서를 정리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몇 달간 쫓아다니면서 서류를 모으고 있다는 할머니, 토지불하서류 원본을 잃어버려 복사본으로 등기를 하려 하니 무조건 안 된다고 해서 여기저기 청원을 하러 다니는 아저씨, 분명히 농지를 불하받았는데 문서상으로 그런 땅이 없다고 해서 알아보러 다니는 사람 …, 그런 이야기들은 언제나 어느 동네의 아무개 역시 그런 일을 당했는데 누구에게 돈을 얼마 주니까 금방 해결되었다더라… 로 끝이 맺어졌다.
이곳 역시 법조항은 21세기다. 공무원은 국민에게 복무한다고 기록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이렇게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고, 국민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행여나 밉보여 일을 그르칠까 전전긍긍하며 눈치를 보는 모습이다. 관료주의와 권위주의, 행정편의주의가 어떻게 손을 쓸래야 써 볼 수 없게 사회 곳곳에 깊숙이 물들어 버렸다. 중앙에서 멀어질수록 더하다.
한 나라의 사회적 관념이 어떠한가에 따라 그 구성원들의 의식과 행동양식이 정해진다는데 여기는 여전히 관료는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요 국민들은 봉이다. 국민들을 섬기지 않다가, 어려울 때는 내팽개쳐 놓다가 기득권층에게 뭔가 필요하거나 세금을 걷어야 할 때, 갑자기 국민은 이 나라의 주인이 되고, 하나하나 너무나 중요한 존재로 떠받들어진다. 사람들이 내 일이 아니면 무관심하거나, 자리하나 꿰차고 있을 때 부를 축적하려는 현상은 나라가 그렇게 잘못 물들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대접받는 나라, 잔머리 굴리는 사람들에겐 일하지 않았으니 먹지 말라고 호통 쳤던 바보이반이 다스리는 나라는 톨스토이의 이야기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을까?
바보이반의 나라가 그리운 요즘이다.
모스크바교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