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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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것들
  • 한울안신문
  • 승인 2009.02.27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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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성은미(사)평화의친구들 간사의 캄보디아에서 온 평화의 편지

내가 다니는 왕립 프놈펜대학교 크메르어(캄보디아어) 어학당은 캄보디아어를 배우려는 외국인들과 한국어학과, 일본어학과, 중국어학과, 태국어학과에 다니는 캄보디아 학생들로 늘 붐빈다. 프놈펜 시내가 고층건물과 자동차, 오토바이들 때문에 점점 번잡해 지는 것에 비하면 사람들만 붐비는 이곳은 나무도 있고, 연못도 있고 앉아 쉴 수 있는 벤치도 있어서 공부하는 공간이자 쉼터이다.


캄보디아어를 배우러 온 외국인들 중에는 막상 집 외에 조용히 공부하고 사색도 할 수 있는 휴식공간을 찾을 곳이 없어서 하루종일 이곳에서 책을 보는 사람이 많다. 사실 공간만 생기면 건물을 지어 올리려는 정부와 돈 있는 사람들, 땅 투기하는 외국 기업들과 투기꾼들 때문에 휴식을 위한 공간은 점점 더 없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이곳 어학당에도 학생들이 밥 먹고 사람들을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구내식당이 4군데가 있었다. 4군데라고 해도 건물 하나에 주인 4명이 각각 임대받아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식당들이다. 여느 다른 길거리 식당과 마찬가지로 한 가족이 몇몇 고용인들을 두고 운영한다.


내가 주로 가던 식당도 한 가족이 운영을 하고 있었는데 아주머니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할아버지는 바깥에서 오랫동안 익힐 음식을 위해 숯불을 피우고, 딸들은 음식 나르고 계산하는 식으로 운영을 했다. 인심 좋은 아주머니와 할아버지, 언제나 잘 웃어주던 딸들은 낯선 이국땅에서 생활하는 이방인들에게는 음식값 이상의 포근함을 주어서 자주 갔곤 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내부공사를 한다고 문을 닫더니 낡은 식탁대신 화려한 색깔의 의자와 식탁이 놓이고, 큰 패스트푸드점에서나 볼 수 있는 높은 계산대가 놓이고 주인도 바뀌어버렸다. 물어보니 식당 4군데를 한 사람이 사들여 ‘보기 좋게’ 바꾸어버린 것이다.


일하던 사람들도 한 가지 옷으로 통일해서 예전처럼 누가 주인인지 몰라 쭈뼛거리던 불편함은 없어졌지만 따뜻한 웃음과 이곳 생활에 대해서 식당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던 시간도 함께 사라져버렸다. 언제나 어눌한 캄보디아말로 안부를 물으면 알아듣기 쉽도록 천천히 대답해 주시던 아주머니, 아직은 외국인을 대하는 게 어렵기만해서 가끔 큰소리로 인사하면 주름진 웃음으로 대답해 주시던 할아버지는 어디에서 또 힘든 생계를 이어가고 계실까?


캄보디아도 온통 재개발(?) 바람이 한창이다. 그나마 도시의 숨구멍 역할을 했던 강변근처와 벙꺽 호수도 곧 메워지고 정리(?)되어서 현대식 고층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캄보디아 빈민지역이었던 ‘데이 끄라홈’ 지역도 살던 사람들을 내쫓고 새 건물이 들어선다고 한다. 뚤뚬뿡 시장 주변 노점들도 외국인들이 많이 오는 곳인데 도시 미관을 헤친다는 이유로 없어진다고 한다.


세월의 고단함이 얼굴에 가득 새겨진 아주머니들과 주고받던 가격 흥정도 조만간 사라지고 예쁘게 진열된 상품들이 에누리 없는 가격표를 달고 손님들을 맞을 것이다. 시골에서 농사지은 물건을 들고 하루 생계를 위해 새벽차를 탔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야만 할까?


세상은 이렇게 편리하게, 보기 좋게 변해가는데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변해가고 있을까?


얼마 전 한국에서도 살기위해 몸부림치던 6명의 사람들이 재개발 바람에 귀중한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에서, 캄보디아에서, 또 세계 곳곳에서 고층건물들, 최신식 아파트들 뒤로 사라져버린 사람들…, 그들과 나누던 가식없는 삶의 모습들은 어디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해서 다시금 돌아봐야하지 않을까? 또 그렇게 새로이 얻는 것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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