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기수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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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무기수와의 만남
  • 한울안신문
  • 승인 2009.11.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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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강해윤 교무의 교정교화이야기 8

흔히 조폭이라고 불리는 형님들은 교도소에 오는 것을 조직을 위해 봉사하는 것쯤으로 여기고, 교도소 내에서 자신들의 위치가 공고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옥살이가 좀 나은 편이다. 그래서 조직폭력과 관련한 수용자들은 특별관리 대상이다. 하지만 그런다 해도 감옥생활인데 장기수가 되고 보면 그 기나긴 세월을 견디는 것이 쉽지 않다.


두려움이 없었던 어린 시절, 조직 폭력에 가담한 노형철(가명)은 젊은 나이에 상대 조직원을 무참히 살해한 일로 붙잡혀 목포교도소에서 17년째 복역 중이다.


나는 그를 한번도 본적이 없지만 그를 꼭 만나 달라는 어느 선배의 부탁을 받고 약속된 날 중간 만남의 장소인 익산으로 내려갔다. 나를 모시기(?) 위해 고급 외제차를 탄 형님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약간 불편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교도소에 도착해 그를 면회했다.


노형철은 매우 준수한 외모를 가졌고 공손한 태도를 유지하였다. 오랜 시간을 교도소 안에서 살면서 수용생활이 오히려 익숙해진 그런 사람이었다. 그가 나를 보자고 한 것은 무기수로서 20여년 가까이 복역을 하였기 때문에, 감형이 된다면 곧 바로 형을 종료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종교인의 도움을 받기 위함이었다. 대신 그는 이곳에서 원불교 집회가 열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을 했다.


편지를 하도록 주소를 건네주며 우선 교전을 넣어주기로 하였다.


면회를 하고 올라 온 며칠 뒤 그의 편지가 도착하였다.




교무님 전에 올립니다.


먼저 먼길 찾아 주셨음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 전해 올립니다.


생면부지인 저에게 어떤 형태로든 도움이 되어 주겠다는 심정으로 바쁜 가운데 찾아 주신 것에 대해 거듭 감사드립니다. 비록 큰 죄를 짓고 갇혀 지내는 처지이기는 하지만 한 가지 확실히 아는 것은 저를 이롭게 해주시려는 분들에게 만큼은 어느 한 순간이라도 실망을 끼쳐 드리지 않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OO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생존해 계시고 3남2녀 중 차남입니다. 아내가 있는데 스물둘 때부터 서른아홉 된 지금까지 아무 능력도 없고 도리도 못하는 저만 바라보며 기다려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2004년 귀휴를 나갔었는데 그 때 아내가 임신을 하여 지금 19개월 된 딸도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을 기다려주는 것도 모자라 기를 쓰고 아이까지 가지려고 노력하더니 급기야는 현실로 만들어 놓아 버렸으니 참으로 모를 일입니다.


제가 스물일곱 되던 해인 1990년 1월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고 들어와 오늘까지 이곳에서 살고 있으니, 20대에 들어와 이 안에서 17년의 세월을 보내고 중년이 되었습니다. 생사람 잡아 가둬놓고 이 세월을 고생시킨다면 그 누구도 견뎌낼 수 없었을 것이지만 스스로 지은 죄를 잘 알기에 큰 불만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곳이 저에게는 더 익숙한 생활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아내에게서는 느끼지 못했는데 귀휴 나갔을 때 나를 알아보고 재롱을 떠는 딸아이를 보니 바깥 세상에 나가서 살았으면 하는 강렬한 욕망이 생겼습니다.


죄도 짓지 않은 멀쩡한 사람도 머리를 깎고 산속에 들어가 도를 닦기도 하는데, 어차피 죄는 지었고 바둥거린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닐 것이니, 나 또한 도 닦는다 생각하고 살아 왔는데 자식이 생긴 후론 그 각오가 저도 모르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말 그대로 징역살이일 듯 싶습니다.


다행히 교무님을 만났으니 많은 부분 위로가 되고 희망이 생길 것 같아 부풀어 있습니다. 많이 도와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형철 드림




편지를 읽고 나서 며칠 동안 고심하면서 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가 원하는 답을 줄 수도 없었고 다시 목포교도소에도 내려가지 않았다. 은혜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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