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교단 초창기의 살아있는 역사는 월말통신, 월보, 회보에 나타나 있습니다.
월말통신(月末通信)은 교단 최초의 정기간행물로 1928년(원기 13) 5월에 창간하여 처음에는 매월 1회씩 발행하였습니다. 34호를 발행하고 1930년(원기 15) 12월 이후로 15개월간 중단하다가 1932년(원기 17) 4월에 35호부터 다시 발행하였고, 36호 부터는 월보(月報)라고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47호까지 발행한 후 출판허가가 없다는 이유로 일제 당국에 압수 폐간되자, 정식 출판 허가를 얻어 1933년(원기 18) 8월에 회보(會報)를 창간 발행하였고, 1940년(원기 25) 6월에 65호를 마지막으로 일본의 언론 탄압정책과 경제의 핍박으로 인하여 자진 정간하였습니다. 창간호부터 12호 까지는 프린트판, 13호부터 65호까지는 인쇄본으로 발행하였습니다. 소태산 대종사의 법설·교리해설·교도들의 감각 감상·교단소식 등을 실어 교도들의 교리 훈련과 수행에 기여하였습니다. 이를 8·15 광복 이후 회보를 계승한 것이 오늘날의 월간 원광(圓光)입니다.
요즘 교당에서 발행하는 ‘예회보’도 그 형식이나 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월말통신 7호(원기13년 9월호)에 실린 김남천 선진님의 감각 1편과 그 뒤에 덧붙인 부고(附告)를 보면 공부인 한 사람 한 사람의 감각을 얼마나 소중히 하였는지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때에 선생께서 금강원에 계시사 일반 선도(禪徒)로 더불어 매일 아침에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 라는 의두를 문답하실 새 하루 아침에 1, 2인씩 물으시사 차례로 윤회(輪回)하기를 3,4 회에 이르매 어언 선기(禪期) 3개월이 되었으되 한 사람도 견성한 허가를 얻지 못하였다. 혹 어떠한 사람은 ‘이 의두를 어느 때에 알 것인가?’ 하여 초조한 마음을 가지는 자도 있고 또 어떠한 사람은 나는 못 알 것이라 하여 스스로 낙심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이즈음에 김남천 씨의 밝으신 감각을 듣고 여러 사람은 안심을 하게 되었으니, 씨(氏)의 감각은 아래와 같다.
“내가 어느 때에 암탉(모계 母鷄)이 병아리 까는 것을 보았습니다. 10여개의 알을 품고 주야로 쉬지 아니하면서 20여일을 두고 궁굴리더니, 급기야 깨어질 시기가 되니까 하나씩 둘씩 차례차례 깨어지는 중 암탉의 품에 벗어난 것만 고란(枯卵)이 되고 말더이다. 그런데 우리 선생님께옵서 날마다 이 의두로써 우리를 궁굴려 주시는 것이 꼭 전자(前者)에 말하던 암탉이 병아리 까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선생님께서 가르치시는 법에 벗어나지만 아니하고 될 만한 한도까지 닦아 가면 미망(迷妄, 미혹하고 허망함)의 껍질이 다 벗어지고 대원(大圓)한 성체(性體)가 드러날 줄로 자신합니다”라고 하더라.
부고(附告)
위 감각은 이미 견문법식안(見聞法識案)에 등록된 것이올시다. 비록 문사(文辭)가 찬란치는 못하나 심장한 그 의지(意志)는 우리 공부인에게 한번 광고할 가치가 있는 줄로 자신하나이다. 앞으로는 어떠한 형제시든지 여하한 경우 또는 여하한 사정에 접응하여 혹 어떠한 감각이 나시거든 그 감각된 사유의 강령만 적어서 본 연구부로 보내주시든지 직접 기고해 정신해(精神海)에서 흘러내린 좋은 감각을 소각(消却) 시키지 마시고 후세에 법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원불교사이버교당(www.woni.net)
<마음공부> 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