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지진피해 긴급구호팀 결성이후 처음 하는 일은 늘 그렇지만 양질의 현지정보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것이다. 현지 협력단체에 대한 정보도 인터넷과 인연 등을 통해 확보해 나가고 긴급구호팀으로 다녀온 다른 NGO들 실무자들을 만나 필요한 정보를 획득해야 한다. 아울러 국제기구들의 활동과 지침 등을 확인하고 우리정부의 대응방향과 안전과 관련한 정보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긴급구호의 방향과 내용이 선별된다.
이번 일본 긴급구호대는 동경교당을 거쳐 피해지역인 미야기현 센다이 인근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동선을 확정했다. 동경에서 센다이까지 이동시간은 6시간인데 이동경로를 보면 후쿠시마를 거쳐서 가도록 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간 3인과 일본에서 합류한 NGO 2인 등 총 5명이 동경교당에서 위령제를 지낸 후 현지에서 구입한 지원 물품과 한국에서 준비해 간 건전지 등을 싣고 이동했다. 동경에서 3시간 정도 지나자 후쿠시마를 알리는 이정표가 나왔는데 원전에서 약 40Km정도 떨어져 있는 고속도로를 지나면서부터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센다이시는 인구 백만이 넘는 미야기현의 현청(도청)이 있는 대도시다. 우리 일행이 도착한 저녁 센다이는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해 보였다. 사람들은 차량을 이용해 조용히 오가는 일상적인 저녁 모습이었는데 보이는 것과는 달리 편의점 대다수는 문을 닫고 있었고 문을 연 식당들은 메뉴가 라면 1-2가지만 가능했다. 숙소 주인은 가스가 아직 연결이 안돼 씻는 것과 식사는 불가하다고 알려주며 여진이 계속되고 있으니 엘리베이터를 절대 타지 말고 창문을 멀리해서 잠을 자라고 몇 번에 걸쳐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다음날 센다이시 미야기노 구청과 지진자원봉사센터를 방문해 지원물품을 전달하고 자원봉사활동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확인했다. 구호물품은 전국각지에서 구청이나 시청을 통해 모아지고 대피소나 피해지역으로 수요에 맞게 배분을 하고 있었다. 자원봉사활동도 접수, 활동내용 교육, 결과보고, 평가 등의 수순을 통해 차분히 진행되고 있었다.
구청과 자원봉사센터 방문 후 피해지역을 둘러보았는데 센다이 중심부에서 불과 차로 10분 정도 이동하면 황폐해진 현장을 볼 수 있었다. 아마 핵전쟁 이후 살아남은 인간 몇몇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이 그려지는 영화 속에서 보던 공간을 상상을 한다면 그런 모습일 것이다. 참으로 자연이 주는 위력은 대단하고 무섭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더 이상 인간의 욕심으로 만들어지는 재앙이 없기를, 그리고 마땅히 평등하게 나눠야할 것들을 빼앗아 독식하면서 누리는 우리의 안락과 풍요는 잘못된 삶임을 깨닫는 계기가 되기를, 미래 세대의 것까지 착취하고 수많은 생명을 죽이고 파괴하며 누리는 우리의 삶을 회개하고 참회하는 계기가 되기를, 그리고 영령들이 완전한 해탈천도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현장의 위령제는 더욱 간절해 질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본 대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 피해는 오랜기간 동안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칠 줄 모르는 여진과 후쿠시마 원전의 불확실한 대응, 더딘 복구 작업과 살아남은 사람들의 트라우마 속에서 하루하루 힘든 시간을 보내야할 것이다. 대피소에서 만난 70대 할아버지가 “일본은 이번 일을 계기로 더 강해져야 한다. 물리력으로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연과 한 몸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는 정신의 힘으로 강해져야 한다”며 역설하는 모습은 피해를 당한 일본에게나 역사인식과 독도문제 등 불편한 관계로 지원을 하느냐 마느냐 논쟁을 벌이는 우리에게나 진정한 관계가 무엇인지를 되돌아 볼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지진피해를 당한 일본국민들이 새롭게 일어설 수 있기를 그리고 진심을 나누는 한국의 지진피해복구를 통해 진정한 동반자로서 한국과 일본이 관계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