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산일족파삼관 , - 흠산이 화살 하나로 세 개의 관문을 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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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산일족파삼관 , - 흠산이 화살 하나로 세 개의 관문을 뚫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11.10.1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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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김덕권 교도의 청한심성

거량(巨良)이라는 선객이 흠산 화상에게 물었습니다. “화살 한 개로 세 개의 관문을 뚫었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그 관문 속의 주인을 꺼내놔 보아라. 구경 좀 하자.” “잘못을 알았으니 반드시 고치겠습니다.” “어느 때를 기다려야 하는가?” “화살은 잘 쏘셨는데 맞추지는 못했습니다.” 거량은 이 말을 하고 나가려고 했습니다. 이에 흠산이 그를 불러 세웠습니다. “잠깐, 양수좌!” 그가 돌아보자 흠산 화상은 그의 멱살을 움켜쥐고 말했습니다. “한 개의 화살로 세 개의 관문을 통과하는 것은 그만두고 나에게 화살을 한 번 쏴 보거라.” 거량이 말을 할 듯 말 듯 망설이자 화상은 그에게 일곱 방망이를 치면서 말을 했습니다. “너는 한 삼십년 쯤 더 공부해야 알 것이다.”


관문이란 원래 국경의 검문소를 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검문소는 국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에도 검문소가 있습니다. 범법자나 수상한 사람이 국경을 통과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의 양심이 바르지 못하면 마음 검문소를 통과할 수 없습니다. 이걸 어기고 통과하면 두고두고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게 되는 법이죠. 선문(禪門)에서도 관문이란 말을 자주 씁니다. 무문관(無門關)도 그렇고 ‘조사관문(祖師關門)’이란 말도 그렇습니다. ‘조사관문’은 조사께서 수행자들의 공부를 점검하여 한 소식 깨쳤는가, 못 깨쳤는가를 확인하고 인가(認可)를 내리시기 때문에 그런 말이 생겼을 것입니다.


‘마음이나 알고 삽시다’라는 책을 쓰신 중견 판사가 한 분 계십니다. 이 분이 법관으로서의 경력을 쌓고도 판결을 내리는 데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왜 오류가 발생한 것인가를 추적하다가 모든 것이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치셨다고 합니다. 법관의 경우만이 아닙니다. 우리네 인생사에서 매순간 마다 결정하고 판단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순간순간의 결정과 판단, 이 모든 것이 시간이 지나 그 결과를 보아야 옳게 결정을 했는지 그릇 판단을 했는지 결판이 납니다.


일찍이 많은 부처님이 출현 하셨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녹야원(鹿野苑)에서 발제하(跋提河)에 이르기까지 49년간이나 법을 설하시고도 단 한 법도 설하신 바가 없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뜻을 알지 못하고 밖으로만 법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며, 말하려 해도 말하지 못하며, 알려고 해도 알지 못하는 이 답답함. 무엇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최선인가요? 깨치지 못한 사람은 결코 대답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순간 진리를 깨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도 스스로의 마음관문에 부끄러움이 남아있다면 일곱 방이 아니라 삼십 방을 맞아서라도, 삼십년이 아니라 한 100년을 걸려서라도 깨달음을 얻어야 화살 한 대로 세 개의 관문을 뚫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설두(雪竇) 화상이 송(頌)을 하셨습니다. ‘그대에게 관문 속의 주인을 내보내니/ 활을 쏜 무리들은 조잡하게 굴지 말라./ 눈을 보호하자니 귀가 멀게 될 것이고/ 귀를 버리자니 두 눈이 멀게 될 것이다./ 불쌍하구나, 한 화살에 셋을 꿰게 되나니/ 화살이 지나간 자국은 분명도 하구나./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현사가 한 말을./ 대장부의 마음은 하늘보다 먼저이니라.’


만약 능히 일족파삼관(一鏃破三關)을 못했다면 옛 사람이 파놓은 굴속에서나 알아 차려야 할 것입니다. 아! 언제나 화살 한 대로 첩첩관문을 뚫어 화상의 멱살을 움켜잡고 큰소리 칠 수 있는 날이 찾아올 런지요?


원불교문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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