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년도에 들었던 ‘현대 과학 기술의 이해’라는 강의명이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나는 이유는 미녀 교수의 영향이 크다. 강의를 들을 때도 실로 대단한 집중력을 발휘했었는데, 아직도 대부분의 강의 내용이 기억난다. ‘유비쿼터스 컴퓨팅(ubiquitous computing)’을 제대로 이해한 것도 이 강의를 통해서이다.
이 개념은 사전적으로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컴퓨팅을 의미한다. 당시에 내가 상상한 유비쿼터스 컴퓨팅 환경은, 공중전화처럼 거리의 곳곳에 가정용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는 부스가 설치된 모습이었다. 집에서 작성한 과제의 오타를 수정하기 위해서 PC방을 찾아 다녀야 했던 때이기에 편리한 환경이라고 하면 그 정도를 생각했었다. 그렇게 조잡한 것을 상상하는 동안에 누군가는 훨씬 세련된 미래를 보았던 것 같다. 그 해 7월, 아이폰이 세상에 나왔다.
그 당시에도 스티브 잡스는 IT 세계를 구원할 구세주였고 수많은 컴퓨터 공학도들의 우상이었다. 하지만 지금 만큼의 인지도는 아니어서, 그의 이름은 가끔 TV나 라디오의 퀴즈쇼에 애플사(社)의 CEO를 묻는 문제로 출제되기도 했다. ‘현대 과학 기술의 이해’의 미녀 교수님도 학생들에게 매킨토시와 아이팟의 개발자를 아느냐고 물었었다. 자신 있게 손을 들어서 ‘존스 홉킨스’라고 대답한 아픈 기억이 있다. 2007년은 의학드라마 ‘하얀거탑’이 방영된 해인데, 극중 차인표의 출신대학이 존스 홉킨스 대학이다.
아이폰의 출시와 함께 스티브잡스는 새로운 IT 패러다임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고, 잡스의 이름은 이제 퀴즈의 소재와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그만큼 우리는 상상에만 존재했던 세계에 가까워졌다.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가상현실에 산다. 예전에 가상현실이라고 하면 고글 같은 안경을 쓰고, 헤드셋을 끼고, 온몸에 촉수를 주렁주렁 단채 암흑의 터널을 통과해 접속해야 하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스마트한 세계의 사람들은 네모난 기계와 이야기 하고 소통한다. 무섭게도 현실에 있다고 착각하며 가상을 살아간다. 가상 세계에 접속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을 사회적 교류로 정당화 하고, 현실의 자신을 당당하게 기만한다.
복고가 유행이다. 올해 초 개봉한 영화 ‘건축학 개론’은 1996년도, 그리고 선풍적인 인기의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은 90년대 후반이 배경이다. 그런데 복고를 그렇게 멀리서 찾을 필요가 있나 싶다. 세상이 어찌나 빠르게 변하는지 불과 5년 전인 2007년의 이야기도 ‘그것 밖에 안 되었어?’ 할 정도로 낯설다. 그 만큼 미래를 예측하기가 어려워졌다. 나오는 물건마다 충격적이고, 새로운 시도마다 획기적이다.
얼마나 준비하고 맞이한 미래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과연 이 시대를 준비한 사람인가? 예측하지 못했던 과거는 지나갔다. 하지만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는 우리가 과연 좋아서 좋다고 하는 건지, 정신 못 차리고 바보처럼 입을 헤벌쭉 하고 있는 건지 돌아봐야한다. 바야흐로 물질 개벽의 시대다. 얼리어답터에의 동경보다는 물질의 선용에 초점을 맞춘 시대정신이 요구되는 때이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