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구메, 와이리 춥노….
겨울바람은 역시 매섭다. 대동강물도 풀린다는 우수라 해서 얕봤던 덕을 톡톡히 치룬다.
열세번째 맞는 순례길.
겨울 순례기간 내내 챙겨왔던 마스크며, 내복을 가방속에 다시 밀어넣으며, 오늘 순례길에서는 봄기운을 느껴보리라 기대했는데, 웬걸? 걷기시작하자 다리부터 시리다. 엊그제 담양 어디메에서 산수유가 환히 핀 것을 보고, 내마음이 너무 이르게 봄을 맞았나보다.
순례기간 통틀어 최연소 참가자인 초등4학년 영준이는 시작하자마자 “몇킬로 남았어요?” 묻기시작한다. 아마도 걷는 내내 영준이는 이 길이 얼마 남았는지 궁금할 것이다.
영광터미널앞에서 잠시 “핵발전을 멈추고, 태양과 바람 에너지로 전환하자”며 교무님이 말씀하시자, 할아버지 한분이 “그럼 전기는 어찌써?”라고 소리치며 지나치신다. “그렇죠. 위험한 핵에너지말고 태양과 바람으로 안전한 전기를 쓰자는 거죠”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으나 이미 멀리 뒷꼭지만 보일뿐이다.
100㎞ 길에서 150㎞는 족히 넘을 속도를 내며 ‘부앙’거리는 차소리와 사정없이 볼딱지를 때려대는 겨울바람을 피해 마을너머로 눈길을 거둔다.
“아, 요기 요 나무들, 그러니까 가로수로 심어놓은 이 나무들 이름이 뭐더라? 여름이면 분홍빛의 꽃을 백일간 피워내는?” 입에서만 맴돌뿐 나무이름이 썩 떠오르지 않아 앞서가는 교무님께 물으니 ‘백일홍’이란다. 영산 대각터 양옆에 한없이 피워내며 여름내내 붉은꽃을 달고 있던 백일홍이 아직 서너살밖에 안된탓에 순례길 내내 왜소하게 일렬 지어 서있다.
“아직은 겨울인데 너희들은 봄을 품고 있구나, 고맙다.”
덕호리정류장에서 영광교구 교무님들이 배달해주신 김밥과 어묵국물로 빈속을 채우고 나니, 영준이는 몇킬로 남은 것이 더 이상 궁금하지 않은가보다.
정토님은 휴가내고, 방학맞은 아이들 둘 데리고 오신 교무님네 가족은 ‘우리는 핵가족’이라며 가족사진과 웃음 한컷을 날리고 다시 걷는다.
영광굴비를 원없이 볼 수 있는 법성이 가까워올수록 바닷바람이 거세다. 바다를 매립해서 산업단지를 만들어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던 법성포매립지 산업단지는 100억이상의 적자를 안겨주고 황량함만 남겨놓았다. 산처럼 높아진 갯벌을 나는 갈매기를 보니 새우깡이라도 챙겨올걸 싶다.
여기까지가 1구간 10㎞ 순례길이다.
“생명, 평화, 탈핵, 살리고~”를 외치고 잠시 휴식을 하니, 핵가족 영준이네가 이별을 고한다. 절반으로 홀쭉해진 5명의 순례단은 언덕을 4곳이나 넘어야하는 2구간 길을 걷는다.
선두에 깃발까지 짊어지신 일흔 넘으신 길산님 발걸음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난 매번 뛰다시피해야서 겨우 보폭을 맞춘다.
“길산니~~임~~~ 천천히 가유” 한번씩 소리쳐야 뒤돌아 보시곤 “어디갔다 왔어”라고 퉁을 놓으신뒤 다시 또 그 속도로 저만치 가버리시고 만다.
일념으로 걷기에만 몰두한다. 누더기 도로, 좁은 2차선 홍농길을 걷다보면 도로가 좁고 낡아 답답함도 있지만 로드킬로 길가에 버려진 동물들의 사체를 지나쳐야 한다. ‘나무아미 타불 관세음보살’도 속삭이고 영주도 외운다.
온몸이 땀으로 가득차고 숨도 턱에 차면 눈앞에 6개의 핵발전소 돔이 나타나고 우린 그앞에서 순례를 멈추고 생명과 평화의 기도를 올린다.
마음으로만 맞은 이른 봄, 천지자연은 매서운 겨울바람으로 가르침을 주신다. 천지자연의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
다음 순례길에는 백일홍 나무의 꽃망울이 어느만큼 더 몽글어 오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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