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상사화(相思花)가 지천에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있다. 상사화의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원래 상사화라고 하는 꽃말의 의미 자체는 이파리가 10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무성하다가 장마가 시작되는 6월이면 형체도 없이 시들고 석 달 열흘을 외롭게 보내고 나서 8-9월에 꽃대를 곧게 세웠다가 9월의 어느 날에는 잎은 없고 꽃대가 올라와서 붉은 꽃을 피워낸다. 잎과 꽃이 동시에 만나는 경우가 없다고 해서 상사병과 같은 의미로 상사화라고 부른다. 상사화를 부르는 말도 가지가지다. 꽃무릇이라고 하고 석산이라고도 한다. 사인화, 장례화, 유령화, 만주사화라고도 부른다. 꽃은 바로 그 꽃인데 부르는 이름은 제각각이다. 상사화를 바라보면서 마치 이웃종교들 간의 진리를 향한 다양한 형상화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오롯이 진리는 하나인데 진리를 향해서 걸어가는 여정은 여러 갈래 길이다.
지난 9월 8일 제1회 호남종교인영성문화제가 열렸던 보성 천봉산 자락에 위치한 대원사에도 붉은 상사화가 널브러져 있었다. 원불교, 천도교, 불교, 천주교, 개신교 5개종단이 함께하는 영성문화제였다. 믿음의 자리와 삶의 자리가 다른 5개 종단이 한 자리에 모인다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영성문화제를 개최하고 한 무대에서 공연을 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서로 이웃종교를 향한 이해와 배려가 없었다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깊은 울림과 감동이 가시지 않고 있다.
영성문화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어려운 점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나면 만날수록 서로 통(通)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역의 핵심사상으로 가장 즐겨 쓰는 말씀이 있다.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則變 變則通 通則久)’였다. 이를 뜻풀이하면 이러하다. “궁극에 이르면 변화하고, 변화하면 열리게 되며, 열리면 오래 간다”는 의미이다. 진리를 품고 찾아가는 구도자라면 하여 진리 안에 자유함을 누리는 수행자라면 통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또한 한결같은 일심으로 오래가야 한다.
식전행사와 제1부 여는 마당 그리고 제2부 다함께로 영성문화제는 진행되었다. 제1부 여는 마당은 원불교 광주원음방송 송지은 교무님께서 사회를 보셨고, 제2부는 쌍촌동 주임사제이신 윤영길 신부님께서 진행을 하셨다. 천도교 천명공연을 시작으로 개신교의 시낭송과 합창이 울러퍼졌고, 불교의 보살춤과 수벽공연, 원불교 은성의 교무님의 시낭송, 이응준 교무님의 독창이 차례로 이어졌다. 5개 종단의 마지막 공연은 천주교에서 준비한 중창과 합창의 순서였다. 1부 행사를 마치고 나서 제2부에서는 촛불제와 각 종단을 대표하는 성직자들의 인사말씀 그리고 더불어 사는 상생을 위한 풍등을 띄워서 칠흑 같은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벅찬 감동과 기쁨 속에서 제1회 호남종교인영성문화제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지만 2014년 제2회 호남종교인영성문화제를 준비하는 발걸음은 더 분주해지고 있다. 해마다 상사화가 붉게 피어나는 9월에는 이웃종교들 간의 대화와 연대를 통하여 더불어 사는 상생의 길로 나아가고자 하는 아름다운 종교인들의 선한 몸짓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