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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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의 진실
  • 한울안신문
  • 승인 2013.10.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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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길튼 교무의 정전산책 11 , (방길튼 교무)

보은은 사은의 도를 체받아서 실행하는 것이라면, 배은은 피은ㆍ보은ㆍ배은을 알지 못하는 것과 설사 안다 할지라도 보은의 실행이 없는 것입니다. (『정전』 사은장)


피은의 피(被)는 ‘입을 피’로 옷을 입듯 은혜를 입는 감수성으로 수양력과 연동되며, 은혜를 아는 지은(知恩)은 사리간에 연마하고 궁구하는 연구력과 연동되며, 은혜을 갚는 보은(報恩)은 정의는 취하고 불의는 버리는 취사력과 연동됩니다.(서품 19장)


보은의 보(報)는 ‘갚을 보’로 메아리처럼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라면, 배은의 배(背)는 ‘등질 배’로 은혜에 등 돌리는 것과 같아, 마치 햇빛을 등지고 햇빛이 없다고 불평하고 외면하는 태도와 같습니다. 즉 보은자는 은혜에 감사의 메아리로 반응하며 배은자는 은혜를 등지고 은혜가 없다고 불평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사은의 피은-지은(知恩)-보은은 수양-연구-취사의 삼학과 연동되어 있으며, 사은을 취사과목의 하나로 삼기도 합니다.



# 보은의 진실


천지은은 응용무념의 도, 부모은은 무자력자 보호의 도, 동포은은 자리이타의 도, 법률은은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세우는 도가 보은의 대요이며 강령입니다.


천지의 응용무념의 도는 바로 진리의 선생님으로 무주상(無住相)의 대시주의 도(道)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의품 15장의 노부부가 며느리에게 실지불공하는 데에 있어서도 노부부에게 며느리는 효ㆍ불효할 수 있는 권능불(權能佛)인 타자(他者)요 당처이지만 고부간의 완전한 해소를 위해서는 당처의 불공만이 아니라 천지의 지극히 공정한 도와 광대무량한 도를 체받아 원근친소와 희로애락에 끌리지 아니하는 중도를 잡아야하고 편착심을 없이 해야 합니다. 이 천지의 도를 체받는 것이 은혜의 신앙심입니다.


부모은의 핵심은 자녀가 무자력할 때의 보호에 있다면 자력이 길러졌을 때는 자유에 방점이 있습니다. 만일 나의 욕구가 부모가 부여해준 부모의 욕구라면 이는 부모에 종속된 노예요 부모배은입니다. 그래서 삼학팔조와 사은사요를 실천하는 주체적 자유인이 되는 것이 부모보은의 제일 조목이 되는 것입니다. 시간적으로는 삼세의 부모가 공간적으로는 사회적 부모가 무자력할 때 낳아주고(生恩) 길러주고(育恩) 가르쳐(敎恩) 주었듯이 이런 진리의 부모성을 체받아서 무자력한 사람을 보호하여 자력인으로 기르는 것이 부모보은이 되는 것입니다.(변의품 25장) 이럴 때 중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인과의 이치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동포은의 자리이타의 도는 일상의 자기이익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역할을 키워서 상대도 이득이 되도록 하는 관계의 관점입니다. 자기를 다 희생하여 남을 이익되게 하는, 자기를 타인의 영역에 던져버리는 헌신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닙니다. 공정한 자리는 바로 상대의 입장을 공감하여 이해하는 것으로, 자리이타로 최선을 다하다가 안 되면 차선책으로 자해타리(自害他利)하자는 것입니다.(대산종사) 자리이타가 최선책이라면 자해타리는 차선책입니다.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세우는 법률은의 경우, 핵심은 인도정의의 공정한 법칙입니다. 법률은 사람이 자유롭고 떳떳이 행할 길인 인도상의 요법에 바탕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자유 위에 조직과 제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제도와 조직을 위해 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와 안락을 위해 법이 있을 뿐입니다. 악법도 법인 것이 아니라 악법은 불의로써 고치고 제거해야 될 대상이지 순종의 대상은 아닙니다. 인도정의의 공정한 법률에서 금지하는 조건과 권장하는 조건에 순응하라는 것이지 악법에 순종하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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