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면 ‘누디(양)’를 끌고, 아니 사실은 누디에게 끌려 다니며 풀을 뜯긴다. 아침 산책길에 운이 좋아 버섯을 만나면 오늘 식탁엔 버섯이 올라온다. 공동체의 식구들이 대략 열다섯 명, 식사당번을 맡은 날은 잔치날 밥하듯 분주하다. 점심을 먹고 나면 봄날처럼 흐드러진 아몬드꽃밭 사이로 노란 괭이밥 꽃길을 걷는다. 오렌지를 하나 따서 신 줄 알면서도 입에 넣어본다. ‘아이셔.’ 얼굴을 구기지만 그 상큼함이 싫지 않다. 노래 한 자락이 절로 나온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오후엔 서로의 재능을 나누는 워크샵을 하기도 하고 며칠째 산등성이를 개간해 계단식 밭으로 만드느라 분주하기도 하다. 한 팀은 부엌지붕이 폭우로 망가져서 어떻게 수리할지 디자인 회의를 하고 지붕에 빗물을 모아 샤워장으로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 발명학회 저리가라 아이어가 쏟아진다. 주말엔 아메리카 인디안식 명상을 하며 서로의 꿈을 나누기도 한다. 해가 지면 모닥불을 펴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한다. 순간 조용해지면 누구는 별을 바라보고 누구는 모닥불을 바라본다. 밤이 깊어 쏘옥 하고 침낭에 들어가면 캐라밴에 지붕이 있고 벽이 있어 감사하다. 새벽녘엔 춥다고 투정을 했더니 불에 달군 돌을 침낭 속에 넣어준다. 그날 밤은 이 세상 어느 곳보다 따뜻했다.
전기도 없다. 빗물을 받아서 샤워를 하고, 해가 나면 햇볕에 데워진 따뜻한 물이 나오지만 흐리면 찬물이 나온다. 뜨거운 목욕 한번 해보겠다고 빗물목욕탕에 불을 지피다가 하루가 다갔다. 해가 뜨면 핸드폰을 충전할 수 있으니 모두 아침이면 하늘을 바라보며 오늘의 날씨를 점친다. 풍력발전기로는 컴퓨터를 충전한다. 금요일엔 이렇게 어렵게 모은 전기로 빛을 만들어 근방의 이웃들을 불러 모아 화덕에 피자를 굽고 춤추고 노래를 한다. 많게는 100여 명이 산골짜기 이 작은 공동체로 온다. 피자에 올려진 토핑들은 이 공동체의 방문자들이 함께 만들고 가꾼 텃밭으로부터 왔다.
이곳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포루투칼의 작은 공동체 ‘아메이쉐리냐(Ameixeirinha)’의 이야기다. 이번 겨울 나는 이 조그만 공동체에서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과 보냈다. 적게는 16살에서 많게는 70대까지 불편함을 경험하고 불편함의 가치를 알기에 이곳을 찾아온다. 나는 이렇게 불편한 공동체만을 찾아다니는 청년들이 많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고 이런 공동체들이 유럽에는 많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우리의 청년들이 유럽배낭여행으로 도시에서 도시로만 점핑을 하는 동안 유럽의 청년들은 적게는 일 년에서 많게는 몇 년씩 돈도 쓰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몸뚱이 하나로 여행을 했다. 큰 농장에 가서 일을 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겠지만 이 친구들 말로는 ‘노땡큐(No, Thank you)’ 란다. 돈을 주는 농장들은 대부분 독성이 강한 농약과 대량생산체제를 갖추고 있어서 공장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그런 농장에서는 진짜 농사를 배울 수도 없고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렇게 몸을 쓰고 땀을 흘려 가꾸는 농장들만 찾아다니며 여행을 시작했고 생태뒷간도, 티피에서 자는 한뎃잠도, 전기 없이 살기도, 농사일도, 집짓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비싼 어학연수가 아니라 도시에서 도시로 점찍듯 이동하는 배낭여행이 아닌 진짜 여행을 권해본다.
‘없어서 행복하길’ 배우기 위해 젊음의 한 자락을 쓰고 있는 이 청년들은 결코 많이 갖고 더 욕망하기 위해 인생을 허비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해가 되지 않게 천천히 살겠다는 이 청년들을 만나게 된 이번 여행은 진정 뭐가 없어서 너무나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