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곧 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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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부처!
  • 한울안신문
  • 승인 2014.10.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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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우세관 교무와 함께하는 의두 23 기행(35) / 우세관 교무 (강원교구 김화교당)

마음이 곧 부처라 하였으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오늘은 의두요목 12조, 전편에 이어지는 이야기로 그 두 번째 시간을 시작합니다.



#1. 기와로 거울 만들기


다시 마조와 회양 스님 두 분 이야기로 돌아와 보지요.


불성을 얻기 위해 좌선을 한다는 마조 스님의 이야기를 들은 회양 스님은 갑자기 마당 한쪽에 떨어져 있는 기왓장 하나를 주워다가 갈기 시작합니다.


“아니 기왓장은 왜 가십니까”


그러자 회양 스님은“잘 갈아서 번들거리면 거울로 사용하려고 하네”하고 말합니다.


마조 스님이 말하지요. “아니 아무리 잘 간들 기왓장이 어찌 거울이 될 수 있습니까”그러자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왓장이 거울이 안 되듯 좌선만 한다고 부처가 되겠는가”하고 말합니다.


법당의 부처님을 흉내내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고 부처가 될 수 없다는 거지요. 기와를 갈아 거울을 만드는 것과같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겁니다. 멀쩡한 마음을 갈아 부처를 만들려 한다는 겁니다.


예로부터 선가에서는 제자에게 깨우침을 주기 위해 독특한 방법을 쓰곤 합니다. 도가 뭐냐고 물으면 괴성을 지른다든지, 막대기로 후려친다든지 하는 방식 말입니다.



#2. 너 참 우습구나!


우리의 성품은, 참마음은 그 자체가 거울입니다. 그저 비출 뿐이지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거울 앞에 서면 예쁘다, 밉다 이야기합니까? 그건 밉상이니 이렇게 고쳐봐라 그러나요? 다만 비출 뿐이지요. 여러 사람이 오가는 터미널에 있는 거울 앞에 서 보세요. 앞 사람이 누구였다고 알 수 있습니까? 누가 누가다녀갔는지 흔적이 있습니까? 거울 앞으로 사물이 오고가지만 거울에 어떤 흔적도 남지 않지요


거울은 비추기만 할 뿐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불성’ 즉 ‘참마음’이 그런 것입니다. 바로 거울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분별이 나타나‘거짓 마음’, ‘움직이는 마음’이 나타나지요. 한마디로 ‘중생심’이라는 것입니다. ‘중생의 마음’은 참마음 즉 불성과 달리 반응을 하고, 흔적을 남기지요.


하지만 ‘참마음’, ‘불성’은 거울처럼 비어 있습니다. 분별이 쉬어 버리면 그게 불성인데 불성을 들고도 이걸 갈고 가는 모습이 우습다는 게 회양 스님의 말입니다. 이미 불성을 갖고 있는데 그것을 애쓰며 구하는 모습이 우습다는 말입니다.



#3. 활불이 되어야지


“그러면 어찌 해야 합니까”하고 마조 스님이 되묻습니다.


회양 스님은 “소가 수레를 끌고 가는데 수레가 가지 않으면 수레를 때려야 하는가? 소를 때려야 하는가?” 이 말에 마조 스님은 크게 깨쳤다고 합니다. 진정한 불성을 찾는 것, 부처의 성품을 찾는다고 부처님을 흉내내어 가부좌를 틀고 좌선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란 걸 깨달은 것이지요.


부처님처럼 되고자 법당의 부처님처럼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으면 되는가요? 그건 조각된 부처, 죽은 부처입니다. 불상이란 부처님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 놓은 상에 불과하지요. 오죽 답답했으면 한 스님이 깨달음을 묻는 제자에게 “살불살조(殺佛殺祖), 부처와 조사가 내 앞에 있다면 모두 죽이겠다”고 하셨겠습니까? 부처님의 외형적인 모양새와 진리를 전달할 뿐인 문자에 묶여(법박) 더 나가지 못하는 모양새를 보고 하신 말씀입니다.


좌불을 흉내내서 부처의 모양새만 취하는 것은 정말로 부처님을 죽이는 일입니다. 이미 2500년 전에 가신 부처님을 두 번 죽이는 것이지요. 부처님은 우리에게 참마음을 깨쳐 살아 움직이는 부처가 되라고 하십니다. 생불, 활불이되라고 하십니다. 대종사님은 실상사 부처님께 불공드리는 노인이 아니라 며느리에게 불공드리는 생불이 되라고 하십니다.


자, 마조 스님과 회양 스님의 대화를 통해 진리와 마음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깨달음은, 즉 진리는 특별한 형태도 없고, 특별한 장소에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무소부재한 것이니 모든 것에 다 이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의 몸을 하고 있으면 거기에도 이어져 있지요. 다만 우리가 분별을 함으로 인해 애써 밀어냅니다. 그러면 이어지지 않지요.


진리가 우리에게도 충만함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각자 각자의 사람에게 충만해 있는 진리, 그것을 ‘성품’이라 합니다. ‘참마음’이라 하는 거지요.


성품에 대해서, 참마음에 대해서 더위를 잡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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