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교당 청운회장 ...이지철 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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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교당 청운회장 ...이지철 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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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7.02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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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적 갈등, 실천으로 극복했어요."
“양 미간의 내천(川)자를 없애는데, 꼭 30년 걸렸네요.”
이지철 중구교당 청운회장은 30년 동안 매일 아침 출근하기 전 거울앞에서 웃는다. 그리고 자기 암시를 한다고. “오늘은 제발 화내지 말고, 화평하게 살자.”
고등학교때 ‘인상파’로 불릴 정도로 뚜렷하던 내천자가 없어진 비결은 바로 원불교 교법에 있다. 이교도는 “마음 정하는 표준을 교법으로 정하고 살다보니 급하고 고집 센 성격이 깎이고 깎여 원만한 성격으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이지철 교도는 중구교당에서 청년회, 보은회, 지금의 청운회까지 모임의 핵심멤버다. 보은회는 원기 66년 직장 다니는 청년 중심으로 청년회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었는데 이교도가 주도적 활동을 해왔다. 평소 “주는 것이 받는 것” 이라는 신조로 살아온 그는 “내가 청년회를 도와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청년들과 어울리다 보니 젊음을 얻었다” 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원불교의 돌리는 공부가 몸에 밴 그는 지금껏 사회생활로 힘들거나 괴롭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단다. IMF 사태로 금융권에 찬바람이 불 때 다른 은행 직원들은 모두 내근을 하는데 혼자서 예금유치 권유를 위해 공공기관 등을 방문하고 다니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다닐때의 일이다. 부장님이 “이 과장 고생한다” 라고 하자 그는 “과장님! 남들은 돈내고 사우나 가서 땀흘리는데, 나는 월급 받아가며 땀을 흘리니 얼마나 좋냐”며 정색을 해 부장님이 오히려 무안해 하기도. 물론 이렇게 긍정적인 인간형으로 되기까지는 낙천적인 성격으로 기질변화시키려는 숨은 노력이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이던 원기 57년, 그는 서면교당 교화부장이던 형(이장준 교도)때문에 친구 10명을 교당에 보내고 “나도 안 나가면서 친구들만 보낼 수 있나” 싶어 보름 뒤 처음 교당에 나갔다.
물론 신앙생활의 고비도 있었다. “머릿속으론 교리를 꿰고 있다고 하지만, 과연 나의 행동은 종교인의 모습이 맞나?” 라는 회의가 떠나질 않아 괴로워 했다는 것. 방황하던 그에게 삶의 지표가 된 것은 김보영 교무의 부촉품 18장 “대종사의 법을 몸으로 실행하고 마음으로 증득하는 것은 더욱 중한 것”에 관한 설법이었다. 자신의 흔들림이 실천하지 않는데서 오는 갈등이었음을 깨달은 그는 이후 하루하루 실천하는 삶을 살고자 반성하고 노력해왔다.
아내(최현진 교도)와는 선을 보고 한달만에 결혼에 이르렀는데, 결혼식장에서 만난 것이 불과 세번째였다. 이 교도는 부산교당에서 결혼식을 올려 부인은 물론 장인, 장모까지 한꺼번에 원불교인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기독교인이던 아내는 지금은 이지철 교도보다 교화활동에 더 적극적이다. 그는 지금까지 아내가 입교시킨 사람만 해도 10명은 넘는다고 자랑하며 일요일마다 운전수 노릇하기 힘들다고 짐짓 투덜거린다. 올해 부부의 목표는 화곡동에서 10명을 채워 단을 구성, 교당에 셔틀버스를 당당히 요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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