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청수 교무, 성라자로마을 나환자 돕기 30년
‘어떤 서원을 세웠기에 그리도 많은 일을 한꺼번에 해낼 수 있을까!’ 강남교당 박청수 교무의 하는 일을 보면 그저 입이 딱 벌어진다. 설이 막 지난 겨울 길목, 올해도 어김없이 박청수 교무는 한센병(일명 나병) 환자들이 정착한 가톨릭의 성 라자로마을을 선물 꾸러미 한 아름 안고 찾았다. 1975년 처음 이곳을 방문한 후 30년 세월을 한결같이 한 해도 빠뜨리지 않고 찾아와 생일상을 차리고, 빰을 비비며 덩실덩실 함께 춤도 추고, 또 용돈까지 꼭 챙기는 박 교무를 이제 할머니·할아버지들은 마치 명절날 자식을 기다리듯 맞이한다.
‘늙지 말고 오래오래 사이소’라며 뭉그러진 손으로 박 교무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을 글썽이는 할머니. 30년의 세월 속에서 이제 내일 모레면 어느덧 70줄이 가까운 박 교무도 목이 멘다.
2월12일, 의왕시 모락산 자락에 터를 잡은 라자로마을에서는 30년을 이어온 공동생일잔치가 펼쳐졌다. 종교와 편견의 울을 넘어 따뜻한 미소로 마주한 정녀와 수녀, 강남교당 교도들과 한센병 환자, 이 자리를 축하해 주기 위해 모인 스님, 목사, 국회의원 등등. 이 날 만큼은 모두가 너와 나의 벽을 허물고, 마음속에 따뜻한 모닥불 하나씩을 지피며 주위를 훈훈하게 달군다.
“종파를 초월해 공동생일을 마련해 주어서 감사하다”는 라자로마을 원장 김화택 신부. “12년 전, 처음 만났을 때, 하얀 박꽃처럼 소박하고 단아한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러나 세월의 연륜만큼은 비껴갈 수 없는 것 같아 콧등이 찡하다”는 마을대표 이흥우 할아버지. “그늘진 곳에 항상 자비의 손길을 내미는 박청수 교무님은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이시다”며 감사패를 전달하는 이용훈 천주교 수원교구 총대리주교.
“신앙의 진정한 힘은 사랑의 빛을 반사해 다른 사람을 비쳐줄 수 있을 때”라며 박 교무 칭찬에 인색함이 없는 강원용 원로목사. “처음 와서 미안하다”며 “종교를 초월한 라자로마을의 지금 사랑은 곧 우리사회의 피정의 집이다”며 미안한 마음 가득 머금는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 이날 자리에 참석한 이성택 서울교구장, 김주원 경인교구장, 진월스님, 이인호 전 러시아대사, 전재희·이계경 국회의원, 한지성 원불교여성회장 등, 참석한 모든 이들의 얼굴에는 사랑과 자비가 가득 고인다.
이날 직접 사회를 보며 행사를 이끈 박 교무는 “지난 30여년의 세월은 알알이 소중하고, 너무 훌쩍 지나 버렸다”면서 못내 아쉬움을 표하며 “그러나 여기 오면서 평화를 생산한다는 믿음이 깊었다. 앞으로도 20년은 더 강남교당 교도들이 찾아와 생일상을 차려 주길 빈다”고 당부하기도. 그리고 2부로 펼쳐진 공연 때는 무대 앞으로 나서 두 팔을 벌려 덩실덩실 춤을 추며 한센병을 앓는 어르신들의 시름을 달래기도 했다.
30년간 성 라자로마을을 도우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 하나. 강남교당 초창시절 라자로마을을 돕기 위해 15년간 엿장사를 했다. 담양 창평역을 팔아 건축기금을 마련했는데, 한때 엿이 부드러운가를 확인하려고 자꾸 엿을 깨물다가 송곳니가 반쪽으로 쪼개지는 일이 있었다. 박 교무는 “그 당시 쓰인 메모를 보면 ‘송곳니 바쳐 나환자 돕는다’란 글귀가 있다”면서 “이런 정성에 감복해 삼성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 여사가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었다”고 회상했다.
노태형 편집장 lst21@w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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