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아침, 대치교당을 찾는 발걸음에 새벽녘부터 쌓인 흰 눈이 묻어난다. 삼성역과 학여울역 사이, 아파트, 음식점들과 학원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대치동 골목골목 쌓인 눈에 오가는 행인들 모습이 넘어질세라 조심스럽다. 퍽이나 도시적인 대치동에서도 주차장 겸 마당 너른 대치교당에 들어서서야 찬찬히 눈 구경을 한다. 다도 교실 팸플릿이 붙은 교당 입구에서 보도블럭까지 얌전하니 비질이 되어있다. 들르는 분들이 혹여 불편할까봐 아침 일찍 서광덕 교무가 쓸어놓은 까닭이다.
‘우리 편’이 되는 것이 먼저
“원기 93년 부임와서는 제일 먼저 한 일이 사무실을 확보하는 거였어요. 교도들과 주민들이 편하게 들를 곳이 필요했지요. 겨울철 논일밭일이 없던 시절에 모여서 얘기도 하고, 주전부리도 먹던 동네 큰 집 사랑방 있잖아요. 그렇게 준비된 열린 공간이 지역 교화의 장(場)이 되는 것이지요.”
거리가 내려다 보이는 사무실 테이블에는 과일이며 약과 등 간식거리가 떨어질 날 없다. 매주 북적이는 다도실과 온갖 살림으로 가득한 봉공실, 시청각 기기가 완비된 청소년실까지, 교당을 내 집처럼 드나드는 교도들을 위한 것이다. 손수 내온 뜨끈한 유자차 한 모금에 얼어붙었던 몸과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추운 겨울날의 차 한잔 같은 느낌일까. 돌아오는 2월 일곱 번째로 열리는 ‘사랑방 음악회’는 크고 거창하기 보다는 작고 친근한 컨셉의 발표회다. 눈높이를 맞춘 무대와 객석이 서로 소통하며, 한번에 한 팀만 초대하는 연주자는 음악 뿐 아니라 인생 얘기도 함께 풀어낸다.
“중요한 점은, 지향하는 장르가 우리 음악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에게는 고유한 정신이 있는데, 이것은 장르를 초월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한국적인 정신입니다. 그것을 계속 건드리고 소통하다보면 ‘우리는 한 편’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죠. 이것이 대치교당이 추구하는 교화의 시작점입니다. 우리 동네 문화 공간으로 이용하다보면, 원불교 교도들에 대한 호감과 소속감부터 들게 되는 것이지요.”
문화와 함께 하는 지역교화에 대한 노력은, 매월 첫째 목요일의 ‘조찬모임’을 시작하게 한 원동력이다. 근처 식당에서 소박한 아침을 나누며 시를 함께 읽거나 지역의 유명 인사를 만날 계획. 또, 사무실에 마련된 ‘북 카페’의 600여권의 책을 교도 및 주민들에게 무료 대여해주는 등 ‘지역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 중이다.
나서서 눈길을 쓸
빗자루를 찾는 마음
정오가 지나면서, 잦아들었던 눈발이 이내 그친다. 말갛게 얼굴을 드러내는 겨울 햇살처럼 차례로 교당 사무실에 들어서는 교도들. 약속이나 한 듯 오자마자 “교무님, 빗자루 어딨어요?” 한다. 그새 두터워진 마당, 한 마음으로 눈 쓸어낼 빗자루를 찾는 그들의 마음이 정겹다.
“교도들이 시작하지만, 결국 주민들이 끌어나가는 ‘대치 장학회(가제)’ 설립이 올해 목표입니다. 장학회원들이 한 달에 만원씩 모아, 어려운 학생들에게 전부 나누어 줄 계획이에요.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해, 모두가 추천하고 모두가 심사한 학생들에게 남김없이 나누어주는 형식으로, 결국 작은 힘을 모아 바로 우리 이웃을 돕는 장학 사업으로 이어가려고 합니다.”
대치교당 부임 전, 평송청소년수련원장을 역임한 바 있는 서 교무는 그 누구보다 청소년 교육의 중요함을 잘 알고 있어, 이 같은 사업을 1년 동안 구상해온 것이다. 이 장학회 만큼은 종교의 색채를 최소화하면서, 지역 사회가 해야 할 사업의 방법과 방향을 제시하는 것에 더 의미를 두고 있다. 청소년과 함께 숨쉬고 직접 부대껴온 그는 미래의 주인인 청소년을 위한 노력이란 타이틀을 떠나, 누구라도 먼저 시작해 함께 힘을 보태야 한다는 굳은 믿음을 지니고 있다.
한 겨울 차 한잔이 향기로운 대치교당. 마지막으로 대각전이며 생활관 등 건물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아쉬운 시간을 마치려는데, 교당 앞 눈길을 서로 자기가 쓸겠다고 아옹다옹하던 교도들이 다시 사무실에 들어온다. 어찌 됐냐는 말에 ‘그냥 돌아가면서 쓸었어요’하며 웃는 그들의 붉어진 얼굴이 어찌 아름답지 않으랴. 그런 주인 정신이라면, 지역의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대치교당, 마음을 모아 청소년을 후원하는 대치교당, 먼저 한 마음으로 교화를 이끄는 대치교당의 미래가, 이 겨울 뒤 다가올 봄날만큼 화창할 것이다. 02)566-8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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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