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야 밖에 보이지 않는 내비게이션을 보며 달리길 몇 시간, 검정 치마에 하얀 저고리를 입은 교무를 발견하자마자 여기저기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한국에서 비행기로 10시간, 파리에서 3시간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프랑스 노르망디의 작은 도시 꼬빌. 그곳에 위치한 ‘원불교 유럽 무시선 한울안공동체’에 23명의 원불교여성회원들이 도착한 것이다.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한 입양청년들이 ‘여성회원들을 프랑스로 초대하고 싶다’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머니의 나라잖아요. 방문객이기 보다는 주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5월 25, 26일을 ‘한울안의 날’로 정하고 입양청년들을 초대하게 됐지요.”
지난 15년간 사)한울안운동 ‘한국 입양청년 모국방문 행사’를 통해 행사에 참여한 입양인과 그들의 프랑스인 가족을 대접하기 위해 프랑스를 찾은 여성회원들. 보여주고 싶은 것, 해주고 싶은 것도 많다보니, 녹두지짐부터 김치까지 한국에서 공수해 한국음식을 준비했다. 입양인들이 좋아하던 부채공예며 한국음식배우기도 생각나 25일은 아예 문화체험의 날로 정하고 사물놀이, 연꽃 만들기, 원만이 만들기 등의 체험교실을 열었다.
‘Bon jour’(봉쥬르) vs ‘안녕하세요!’
“이곳에서 그들을 다시 만날 생각을 하니 설레기도 하고 좋네요. 우리를 잊지 않았겠지요?”
25일 문화체험의 날 아침, 각 체험마당마다 노란 해바라기 표지판이 하나, 둘 꽂히고 여기저기서 ‘봉쥬르’와 ‘안녕하세요’가 오가는데, 묘하게도 입양인들은 한국어로, 여성회원들은 불어를 건낸다.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그 때 배웠던 인사 하나 하나 다 기억하고 있어요.”
2007년 모국방문 후, 한국으로 어학연수까지 다녀 올 만큼 한국사랑에 빠졌다는 알랑은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여성회원들과 재회, 축하를 한 몸에 받았고, 셀린(정미)과 아나벨르(현아) 자매는 남편과 아이 등 9명의 대가족을 이끌고 한울안공동체를 찾아 모국방문 당시 갈고 닦은 연꽃 만들기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또 깍듯한 인사성으로 사랑을 듬뿍 받았던 프랑수아 마리는 입양청년 친구와 함께 행사에 참석, 한울안운동을 통한 모국방문을 권하기도 했다. 어머니의 땅 한국은, 그들에게 밝은 추억으로 기억되고 있음이 확실했다.
“이제 한국하면 자원봉사자들의 따뜻한 마음이 기억난다”는 셀린(정미)은 “나에게 모국 방문은 단지 한국을 간 것이 아니라 한국으로 돌아갔다는 데 큰 의미가 있었다”고 표현해 진행자들을 울컥하게 만들기도 했다.
한울안의 날, 또 다른 주인공
그리고 31여 명의 입양인들과 더불어 이날 또 하나의 주인공이었던 꼬빌 마을 주민들. 어여쁜 프랑스 여고생 4명을 이끌고 온 한국어 교실 선생님. 그리고 2010년 경산종법사 대법회 후 맛본 한국음식에 반해 1등으로 참가신청을 했다는 노부부 등 80여명의 현지인들은 체험교실을 하나하나 돌며 진지하게 수업에 임했다. 특히 불고기와 잡채, 김치 만들기 코너는 동영상까지 등장하며 재료손질부터 보관방법에 이르기까지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현지 한국어 교사 정화 씨는 “프랑스인들에게 우리 한국문화를 소개할 수 있어서 좋았다.”며 “행사를 진행하는 여성회원들이 모두 각 분야의 전문가라는 데에 놀랐다. 그만큼 우리를 배려하는 마음이 많이 느껴졌다.”고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기다리던 만찬, “청년들에게 따스한 한국 밥을 먹일 생각에 힘든 줄도 모르고 일했다.”는 여성회원들의 말에 ‘쎄봉! 메르시!’(맛있다.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는 입양인들. 저 먼 땅 프랑스에서도 우리의 소중한 인연들, 그리고 우리가 품어야 하는 아이들은 자라고 있었다.
사)한울안운동 한지성 대표는 “전 세계의 인류가 한울안 한가족처럼 살아가자는 한울안운동의 정신이 15년 동안 지속적으로 해외 입양인 모국방문을 진행해온 힘이다”며 앞으로도 계속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김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