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종교간 대화 협력운동 소고"김태성 교무
종교간 협력으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앞장 한국은 다종교사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으로 한국사회 안에서 종교간의 갈등이 표출되기보다는 종교간의 대화와 협력이 잘 이루어져 왔다. 이런 긍정적 분위기는 일본 식민지배 하에서 종교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민족독립운동을 이끌었고, 특히 3·1만세운동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민주화의 숨통
1945년 8월 15일에 민족독립을 성취한 뒤 한국 사회는 정치 사회적으로 파행을 거듭했고, 1961년에 군사 쿠데타 정권이 수립됐다. 군사정권은 개발도상국으로부터 벗어난다는 명목 하에 군사독재를 실시하면서 국내적으로는 극도의 억압정책을 폈다. 이처럼 억압된 분위기 속에서 민주화의 숨통을 트는 노력이 종교계로부터 시작되었다.
한국의 종교간 대화운동은 당시 크리스챤 아카데미 원장이던 강원용 목사의 주도로 1965년 10월에 시작되었다. 천주교에서는 노기남 주교가 참여했고, 불교의 청담 스님과 유교의 이병주 박사 등이 함께 상호 이해와 협력을 위한 모임을 갖기 시작했다. 이후 이 모임은 <한국종교인협의회>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점차 협의체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8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의 종교간 대화협력운동은 국제적 종교협력 기구와 접촉하면서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1982년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된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ACRP) 제3차 총회에 한국 종교대표들이 참석했으며, 제4차 서울 총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함께 힘을 모았던 한국내 6대 종단 즉 개신교·불교·원불교·유교·천도교·천주교 등이 다시 결집하여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조직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대북지원 앞장
한국에서의 종교간 협력운동 역사는 짧다. 그러나 단순한 종교적 이해 차원을 넘어 민족사회 공동의 과제인 분단상황을 극복하고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이루어 가기 위한 노력과 조화를 이루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실제로 1970-80년대에 종교계에서 힘을 쏟아 부었던 한국사회 민주화운동 추진은 곧바로 통일운동으로 발전하였다.
1995년 여름에 북한 지역에 대규모 홍수가 발생함에 따라 대규모 식량 지원을 국제사회에 공식적으로 호소하였고, 한국 종교계는 대북식량지원을 위해 함께 노력하여 민간 차원의 대북지원을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1996년 이후 2002년까지 남한 종교계가 북한에 지원한 금액은 3천만 달러를 넘는다.
2000년 6·15공동선언 발표 이후 한국 종교계에서도 남쪽의 7대 종단으로 구성된 온겨레손잡기운동본부가 민간 통일운동단체인 민족화해범국민협의회 및 통일연대와 함께 남북민족공동행사 추진본부를 조직, 6·15공동선언을 기념하는 민족통일대토론회와 8·15광복절 기념 민족통일대축전을 개최해 오고 있다.
종교간 대화운동
한국에서는 1998년부터 ‘타 종교’라는 용어 대신 ‘이웃종교’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종교간 대화와 협력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특히 KCRP를 중심으로 이웃종교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는 <종교청년평화캠프>와 <종교청년문화축제> 등의 행사를 연례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한국의 종교대화 및 일치 운동은 천주교와 개신교 차원의 에큐메니칼운동 뿐 아니라 7대 종단 모두가 참여하는 종교대화협력운동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어 나갈 것이며, 특히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통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이루어 나가는 견인력을 발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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