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천일 정성 올린 청정법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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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천일 정성 올린 청정법도량
  • 조경원 편집장
  • 승인 2022.06.15 14:11
  • 호수 126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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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교당 보은불사 천일기도 해제 법회
방학교당이 6월 12일 대각전에서 보은불사 일천일기도 해제식을 올렸다.

서울교구 방학교당(교무 조수경, 회장 권자인)이 6월 17일 교당 이전불사에 따른 ‘보은불사 일천일기도’ 해제를 앞두고 12일 기념 법회를 열었다.

원기66년 11월 돈암교당의 연원으로 방학동 양옥집에서 시작한 방학교당은 당시 돈암교당 부교무였던 오중원 교무가 초대교무로 부임해 교당 창립인연을 모은 것으로 비롯했다. 이후,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교화를 펼쳐 교화가 성장함에 따라 더 나은 교화 장소를 물색해 수차례 이전을 거듭했다. 이어 원기98년 부임한 조수경 교무가 ‘교화환경개선으로 신앙·수행의 청정법도량 마련’이라는 기도 일념을 세운 지 7년만인 원기104년 8월, 서울 도봉구 방학로3길 13에 자리한 건물을 계약하고 리모델링을 거쳐 원기105년 11월 8일 이전했다.

방학교당 조수경 주임교무가 회고담을 하고 있다.

조 교무는 천일기도를 회고하는 자리에서 “원기104년 9월 22일 천일기도를 결제하고 나서 역대 교무님과 교도님들이 쌓아온 공덕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를 늘 연마했다”면서 “천일의 기도 기간만큼이나 교당 불사 과정에서 겪은 크고 작은 경계는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일념으로 기도를 올리다 보니 때마다 사은님의 보살핌으로 오늘에 이르렀다”고 소회를 밝혔다.

방학교당 초대교무인 오중원 원로교무가 설법하고 있다. 

이날 축하 설법을 위해 교당을 찾은 오중원 원로교무는 돈암교당 부교무 시절 교화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쌀 한 말을 빌려 먹던 돈암교당이 연원교당을 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며, 방학동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얻은 한 칸짜리 방(교당)에서 창립인연을 만나 첫 법회를 연 이야기와 쌍문동과 방학동을 수차례 오가며 빚을 내 갚고, 또 빚을 내 갚아 더 큰 장소로 옮긴 일화는 듣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대산종사의 ‘방학교당이 서울에서 가장 큰 교당이 될 것이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교당 마련이라는 과제가 늘 마음에 있었다는 오 원로교무는 “현재의 자리로 이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뛸 듯이 기뻤다. 이 자리에서 인산인해를 이루도록 교화하고 세상에 보은하자”고 당부했다.

방학교당 고문 한성태 교도가 감상을 말하고 있다.

오늘의 방학교당이 있기까지 교도들의 기도 정성도 빼놓을 수 없었다. 천일을 빠짐없이 출석한 한성태 교도는 전국 각지에서 방학교당 불사에 동참한 재가출가 교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성공은 개인 혼자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니라 진리의 도움이 있어야 하고, 불보살의 호렴이 같이 해야 하며, 이웃의 도움과 대중의 힘이 함께해야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기도를 올리며 체득했다”고 소감을 말했다. 권자인 교도회장은 “재가출가 교도가 함께하는 활불공동체 실현을 위해 힘쓰고,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교당과 미래세대를 위한 교화에도 공을 들이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방학교당 전경

방학교당은 의정부에서 서울로 통하는 관문인 방학사거리에 인접해 있어서 접근이 뛰어나고, 평화도봉공원과 방학천이 도보 1분 거리에 있다. 교당 옥상에 오르면 삼면(서쪽 북한산, 북쪽 도봉산과 수락산, 동쪽 불암산)의 뛰어난 자연경관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교당은 지상 5층 건물로 주차는 총 12대가 가능하다. 1~3층은 임대를 해 교당 경제 자립의 기반으로 삼고, 4층은 대각전, 5층은 소법당과 생활관 및 사무실, 옥상은 정원으로 조성해 수행 및 문화교화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수경 교무, 오중원 원로교무, 한성태 교도
김수길 전 교도회장 부부와 조수경 교무

6월 17일 대각전에서 천일기도 해제식을 올린 교당은 아직 부채 해결 등의 과제가 남아있다.

6월 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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