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일기도 가운데 백일도 참석하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늘 마음에 빚을 진 느낌이고 소성리 할매들과 연대자들에게 거듭 미안하다. 단지 문자로 그날그날 상황을 살피며 마음으로만 함께한다. 그렇게라도 연을 이어가고 있다.
사드 배치는 장소 선정부터 불법이었다. 공정과 상식의 가치를 존중하는 현 정부에서 사드가 왜 필요한지, 장소 선정은 적절했는지, 환경영향평가를 시작하지 못하고 영구 배치한 절차적 부당함을 국민에게 명쾌하게 답하고 바로 잡아주길 바란다.
재난 재해가 발생하면 한 명의 실종자를 찾기 위하여 수많은 공권력과 예산을 투입하여 국민 한 사람의 생명을 존중한다는 국가권력! 그러나 그 권력은 소성리의 힘없는 할매들, 평화를 외치며 절차를 지켜달라는 연대자들, 그리고 사드 배치 이후 알 수 없는 병으로 죽어가는 노곡리 주민에게는 예외인 것 같다. 더운 여름날 농촌의 이른 아침은 일해야 하는 중요한 시간이다. 일주일에 세 번씩 자기 삶의 전부인 농사일을 포기하고 이른 새벽에 나와서 경찰에 저항하는 힘없는 할매들! 몇 시간을 달려와서 연대하는 평화의 수호자들! 그들이 공권력보다 더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고 오직 진실과 정의와 평화만을 위하기 때문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루한 싸움, 기도는 언제까지 해야 하나? 때론 이런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계교 사량이다. 평화를 바라는 사람이 있고, 소성리 할매들이 존재하고 정산종사님의 성지가 다른 곳으로 바뀌지 않는 한, 미국이 그들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하여 힘없는 국가와 국민을 이용하는 한, 우리가 날마다 밥을 먹듯이 그렇게 기도는 이어질 것이다.
일년에 한 번이라도 동참하지는 못할지언정 수고하는 평화지킴이들을 ‘데모꾼’이라고 비난하는 오류는 범하지 말자. 교도라면 적어도 한 번쯤은 성지에 와서 소성리의 일상에 함께하자고 말하고 싶다. 단지 몇 시간 다녀가는 것이 아니라 새벽에 그들과 함께하고 경찰에게 들려 나오는 것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몸이 어려우면 마음이라도 함께 연대하길 바란다.
소성리에서 고령의 문규현 신부님을 만났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장에서 그분은 주민들 곁에 있었다. 어느날 그분 앞에서 나의 출가의 삶이 초라해 보였다. 일체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서원으로 출발한 전무출신의 삶! 나름대로 주어진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민중의 아픔에는 관심마저도 갖지 못하고 살았다. 교도님들에게 맛있는 밥을 대접받고, 차를 마시며, 좋은 곳을 구경하는 교무로 길들었다.
정산종사께서 구도의 길을 떠나신 후 교단을 이루기 위하여 한 번도 찾지 못하고, 열반 후 영정사진으로 들리신 고향! 아버지와 함께 스승 찾아 걸어가신 그 길목에 무기가 배치된 것을 보고 평화의 성자 정산종사는 무엇이라고 하실까?
9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