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며 깊은 감명을 준 책이자 내 인생의 책이기도 하다. 1953년에 출판된 그 책은 장 지오노가 우연히 만난 양치기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짧은 소설이다.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는 오십이 넘어 아내와 외아들을 잃고 혼자가 되자, 인간의 탐욕과 다툼으로 사람들이 떠나버린 황폐한 고산지대에서 홀로 나무를 심는다. 날마다 100개의 도토리를 골라내어 다음 날 심고 자작나무와 너도밤나무 묘목을 삼십오년 넘게 심고 길렀다. 1차 세계대전도 2차 세계대전도 모른 채,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나무 심는 일을 혼자 계속한다. 오년이 지나자 나무들은 부피에의 어깨만큼 자라고 30년이 넘자 프로방스 일대에 나무가 일렁이는 숲을 이뤄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숲이 생기자 꽃이 피고 새가 울고 물이 흐르며 다양한 생명체가 사는 낙원으로 변했다. 황량했던 마을은 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 들어와 사는 행복한 마을로 웃음꽃이 넘친다.
한 사람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 가족을 잃고 혼자가 되었을 때 말을 잃어버릴 정도로 철저한 고독 속에서 묵묵히 나무를 심을 수 있는 인격은 어떤 것일까. 나무가 숲을 이루자 흙이 살아나고 자연이 살아나는 기적은 또 얼마나 굉장한가.
올해 10월은 파주 평화마을짓자에 뜻깊은 행사가 이어졌다. 15일에는 ‘평화마을, 가을을 짓다’는 제목으로 온종일 밭에서 가을잔치가 풍성했다. 꽃팔찌를 한 채 밭 사이를 누비며 다양한 꽃과 풀, 나무들의 이야기를 듣고, 밭에서 자라는 가지, 호박, 감자, 고구마 등으로 채소구이를 해 먹었다. 태양열과 지열을 이용한 에너지 자립 온실에 토종 씨앗과 나무를 심고 누구나 시조 쓰기를 하는가 하면, 어린이들이 숨겨놓은 보물찾기를 해서 장단콩과 유기농 파주 쌀을 선물로 가져가기도 했다. 멀리 산으로 에워싸인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밭 사이에서 박재완 교도와 국악앙상블 서이의 연주를 들으니 가슴 깊이 행복감이 물밀 듯이 스며든다.
올해는 원불교환경연대에서 2018년부터 해온 ‘나이만큼 나무심자’ 사업에 평화마을짓자가 선정되어 대추나무와 살구나무 등 천지보은 숲밭을 이루어 더욱 아름다워졌다. 22일에는 ‘나나무와 가을타기’ 행사가 열려 후원해주신 분들과 원불교환경연대 분들이 오셔서 숲밭을 누비고 허브차를 마시며 에너지 자립 온실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밭에서 딴 호박으로 죽을 끓여 대접하며 나무의사 우종영님의 나무이야기 강연도 듣고 아름다운 핸드펜 연주도 감상하며 훌라춤을 함께 추었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며, 더는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고 탄소를 가두는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는 노력이 우리 삶을 전환해 일상을 바꿔낸다. 빠르게 현실로 닥쳐오는 기후재난을 막으려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실천이 매우 소중하다. 엘제아르 부피에처럼 한 사람의 실천이 갖는 위대한 결과를 생각하며 늦기 전에 우리도 나이만큼 나무를 심자. 천지보은하며 흙을 살리고 자연을 회복시키는 상생의 관계를 맺어가자.
10월 28일자